별의 고향에서,보름달의 성수기

천천히 걸어도 돼, 몽골이니까!

by 도연

천천히 걸어도 돼, 몽골이니까!천천히 걸어도 돼, 몽골이니까!

몽골에서의 캠핑, 마지막 밤이다. 몽골은 별의 고향이라는데 그렇다면 집 떠난 별들이 추석 명절에 고향으로 돌아와 빛의 은하수 대란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했건만 모든 여행이 그렇든 변수가 있었다. 고향을 찾아온 별보다, 성수기를 맞은 보름달의 위엄이 너무나도 크고 환해, 수억수만의 별들이 쪽수도 못쓰더라는 것. 보름달을 가릴만한 높은 빌딩도, 숲도 산도 없어 지평선으로 보름달이 퇴근할 때까지도 하늘은 훤-했다. 어떤 밤은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힘들었다. 구름에 가렸던 별을 잠깐이나마 볼까 하면, 바람이 싸대기를 얼마나 때리는지 고개 한번 들기가 곤욕이었다.



마지막 밤, 별도 달도 아직 뜨지 않는 구름 가득한 하늘.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시간. 온 세상이 우릴 위해 멈춘 듯 한 순간이었다. 공기가 로맨틱 해,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사랑할 것만 같았다. 이대로도 충분했다.


보지 못한 것에 갖지 못할 것에 미련을 두느니
지금 내 앞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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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6시간 이상을 달리는 차에서 보내면서 서른이 된 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 요즘 너희들의 고민은 뭐야? 어떤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고 있어?
사람에 대한 관계. 서른 살의 동갑내기 직장인 둘은, 관계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한다고 했다. 직장에서 얼마나 정을 주는 게 맞는 걸까, 알고 지내던 사람이 나를 이용하는 것만 같고, 좋아하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것이 힘들디. 뭐 그런 류의 대화들이었는데. 나의 서른이 떠올랐다. 쉽게 상처 받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렸다고, 날 이용만 했다고, 나는 그렇게 피해자라고 울고 불며 사람들에게 점점 멀어져 갔다.

"누나는 그때 어땠어?"

"집에 오면 울고, 술 마시고, 주말이면 혼자 영화 보고, 밥 먹고 커피 먹고,
의도적으로 점점 더 사람들, 세상과 멀어졌어. 자발적 왕따를 자처했지.
그러다 심리치료를 배우게 되었고, 그러다 통영으로 내려가버린 거야. 도망쳤어. 견디기 힘들었거든."


그렇게 2년의 시간 동안 세상과 멀어져 보았더니 그들이 나를 등 돌린 게 아니라, 그들이 나를 이용한 게 아니라, 내가 너무 감정이 과했구나, 내가 뭐든지 너무 의미를 두었구나, 내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고 할까, 텅 빈 사막 같은 곳에서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자꾸 손에 쥐려고 한 탓에 자꾸 허무해졌던 게 아닐까.
어쨌든 사람이 어울려 살아야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사는 게 사람 사는 거지. 하며 다시 사회로 돌아왔고, 별난 이 성격과 취향을 맞춰주는 좋은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사랑받으며, 존중받으며 잘 살고 있다.


고작 세 살 많은, 너희보다 더 철이 없는 누나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란 그런 거였다.

- 불필요한 관계를 만들지 않고, 사소로운 정을 두지 않으려고 해. 더 이상 이별하지 않으려고.


어떤 조건을 가진 누군가를 선택하는 일 보다, 서로의 추억과 기억을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되는,

앞으로의 추억을 모두 지켜줄 수 있는 그런 만남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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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타이어가 터졌다. 5일째 오프로드를 6시간 이상을 달리는데 멀쩡하던 푸르 공이 아스팔트로 나온 지 한 시간 만에 터져버렸다. 터진 타이어 바로 위가 내 자리었는데 잉케가 여기 누구 앉았냐고 물었다. 점심을 너무 많이 먹은 게 아니냐고. (ㅋㅋ)
- 미안해요 아까 치킨 너무 많이 먹었어요...


한 번은 꼭 고장이 난다던 푸르 공 우린 고장도 없고 너무 순탄한가 했었지. 왠지 타이어 펑크가 재미있는 이벤트처럼 느껴지던(?) 철없던 순간.


터진 타이어 때문인지 오늘은 갈길이 멀었고 달려도 달려도 목적지가 나오지 않았다. 가는 길 솜(마을)에 들러 주유도 하고 정비도 하고. 시간은 계속 흐르고 해가 질 무렵이 되어도 오늘의 목적지는 한 시간이나 남았다.


"오늘은 목적지까지 다 못 갈 것 같은데, 누나, 이쯤에서 우리 캠핑하고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이자."

"조금만 더 가보자."

"시간도 늦었고 해 가지면 너무 추워질 거야. 그럼 캠핑하기 힘들지 않겠어?."
"조금만 더 가보자."

...

"알겠어. 멈추자."



욕심이 났다. 캠핑의 마지막 밤, 조금 더 웅장한 뷰에서 텐트를 펼치고 싶었다. 어차피 마지막 날이고 멤버들도 이제 익숙해졌으니 조금 무리한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해가져도 랜턴이 있으니 불을 밝히면 괜찮지 않을까. 3일째 초원에서만 캠핑했는데 이번에는 바위가 깔린 뷰에서 캠핑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속마음을 말하지 않았지만 친구들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다들 해외 캠핑 경험이 많지도 않고 또 어떤 변수가 사람을 힘들게 할지 모르니까 무리하지 않는 게 좋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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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론 모든 게 좋았다. 사실, 이젠 뷰고 뭐고 다 상관없었다. 모든 게 좋았으므로.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밤이 지나가고 있다.



-


우리는 잉케가 가져온 술을 나눠마셨고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리고 또 살아온 지난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살면서 힘들었던 일이 언제였는지, 그것을 또 어떻게 이겨냈는지. 우리 중 하나가 질문했고, 지금,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을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태 살아온 것과 다르게 살아질 터닝포인트 같은 시간일까, 지금 이 시간이.

또 생각했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물론 매번 힘들었다. 사랑이라 생각했던 사람들과 이별할 때에도
아버지가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던 순간과 상처 받은 소녀가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도.
사람들은 나를 이용하고 늘 외톨이라 생각했을 때에도.
꿈을 헤지도록 접었다 펼치며 성공과 실패 속에서 허우적 댔다.
성취감이 높은 일을 찾아 하고 일이 곧 나라고 생각하며 앞만 보며 달리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간이 모두 지나고 나니, 모두 다 견딜만했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제일 어렵고, 내 마음을 다스리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동안 받았던 상처들을 쓰다듬는 시간이, 그 상처를 다시 사랑으로 새 살 돋게 하는 시간이 가장 힘들었다.

누구나 힘든 순간은 다르고, 그 고통은 비교할 수가 없다.
좋은 순간을 생각하며 소소한 행복을 더 많이 가지고 사는 것이 내가 그 순간들을 이겨낸 방법이다.





별은 하늘에만 있는 줄만 알았는데 몽골에선 여기 바로 눈앞에도 별이 뜬다.

행복은 저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내 옆에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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