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걸어도 돼, 몽골이니까!
"오늘의 다짐"
현실감각이 없는 내 이상을 좀 붙잡아야겠지. 아무래도? 나도 남들처럼 똑똑하고 강하게, 그렇게 살아야겠어. 이리저리 마음에 이끌려 다니지 말고, 좋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거란 헛된 믿음에 빠져 또 울고, 상처 받지 말고 말이야. 돈도 열심히 벌고, 남들처럼 못되고 치열하게, 독하게 그렇게 살아볼까.
역시 난 아마 그렇게 살 순 없을 거야. 그냥 살던 대로 살아야겠다.
여행이 끝나갈 때쯤 잉케랑 아저씨는 얼굴이 더 밝아지고 화사해졌다.
울란바토르로 돌아와, 캐시미어 매장을 들렀고,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왔다. (아무래도 캐시미어는 지금 내 꼴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샤워를 못했으며, 일주일 동안 머리는 1번 감았다. 매일 물티슈로 세수 정도는 했다.)
내비게이션을 보지 않는 몽골 스타일 덕분에 숙소에 들어가기 전 조금 헤매었으며,
(주로 몽골에서는 지도를 잘 보지 않고 집주인에서 전화를 하더라. "거기가 어디유?" 이런 식)
잉케와 기사 아저씨와는 마지막 숙소 앞에서 작별했다. 헤어지기 전엔 이런저런 생각을 했었다.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 헤어짐의 순간에 꼭 다시 만나자 라고 인사하지만, 우리, 조금은 안다. 어쩌면 평생을 다시 못 볼 사이란 것을.
내가 우울하다고 해서 달려와 나를 위로해줄 수도 없고 서로가 그립다고 해서 약속을 정하고 만나서 차 한잔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우리는 이야기했다. 한국에 꼭 오라고. 오면 꼭 연락해서 만나자고. 너무 고마웠다고.
모두들 발걸음이 더뎠다. 자꾸 뒤를 돌아봤다.
사람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뒤를 돌아보는 유형과 돌아보지 않는 유형
우리 모두는 뒤돌아보는 쪽이었다. 누구 하나 쉽게 등 돌리지 못했다.
잘 가요, 살다가 한 번은 또 만나길 바래요.
여행이 끝나면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J는 너무 슬프다고 했다. 여행이 너무 행복해서 앞으로 남은 날들이 지옥처럼 느껴질 것만 같다고. 너무 걱정이 돼서 지금부터 괴롭다고. 어쨌든 아직 우리는 비행 기고, 아직 한국이 아니고, 그러니까 벌써 괴로워하지 말자고 했다.
"아직 행복할 시간이 30분이나 더 남았잖아.!"
돌아온 한국에서 나는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하루에 한두 번씩 한다. 돌아온 지금 이 현실이 지옥이 아니듯. 미리 걱정하지 말자. 닥치지도 않은 나쁜 일에 마음을 쓰고 걱정하며 이 행복한 순간들을 소비하지 말자.
우리는 행복하기에도 정말, 시간이 많이 부족하다.
딱 7일 전이다.
우리 일주일 뒤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라고 질문했었다.
사랑에 대한 고민
사람에 대한 고민
직업에 대한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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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고민과 걱정 속에서 살던 이들이 데이터도 터지지 않는 몽골 사막 위에서 일주일을 동거 동락했다.
세상에 그 어떤 고민도 없다는 듯 배를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웃을 수 있었던 건, 모든 속박과 역할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이에선 선생님, 디자이너님, 과장님.. 뭐 이런 호칭 같은 것도 없고 평생을 달고 다니던 별명 같은 것도 서로 알리 만무했다. 그러니까 그저 우리 존재 자체만으로 여행했다. 우리는 우리 자체만으로 빛났고 예뻤고 좋았다.
기대하지 않은 것에서 행복을 발견할 때가 있다.
크리스마스 영화 Serendifity (물론 나중에 보니 내용은 바람피우는 내용 같아서 맘에 안 들었지만)에서의 뜻밖에 행운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했다. 몽골 여행이 나에겐 그런 여행이었다. 기대가 전혀 없던 여행, 거기서 발견한 뜻밖에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러 하늘에서 보내준 사람처럼 갑자기 등장했다가 내 삶을 완전히 되돌려 놓아주었다. 너무 멀리 가버린 내 꿈과 나라는 인간에 대한 자신감을 모두 되찾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