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you are already in my life
창에 떨어진 방울 하나의 물이
순간 내 눈물인 줄 착각할 즈음엔
이미 몇 방울의 흔적은
흐린 구름이 예고하였듯,
내 눈물은 아닌 것이었다.
윗 집에서 뿌린 물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한참은 비가 온다고 생각한 채
창 밖을 그렇게 보고 있었다.
더 이상 열여섯이 아니라는 사실이
슬픈 이유는
그때처럼 서럽게 울만한 일이
이미 없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고
지금 흘리겠다는 눈물은
몇 년 동안 건조해져서
울고는 있는데 눈물이
흐르지 않을 뿐이었다.
어떠한 단어로도
굳이 말로 하지 않기에
이 상태의 정체는 어느 누구에게도
탄로 나지 않았지만
심지어 나에게도.
그저 불겠다는 바람을 멈출 이유도
재생을 누르면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는
15 년 전 녹음된 목소리를
정지해야 할 이유도 없다.
꼭 누군가와 무엇을 해야
오늘 뭔가 했다고 보고해야 할 사람도
실제로 그 누군가였던 사람도
없었다고 쳐도
“사랑”이란 단어를 지우고
“이별”이란 단어를 지우고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불러서 아련할 몇 개의 모음과 자음을 지우면
숨 쉬는 주말
어느 도시 어느 건물 안에서
오후를 보내는
때로는 어떤 언어로도
나의 상태를 “그렇다”라고
정의하지 않고 싶다.
그래서 어느 누구의 어떤 의도에 의해서도
이전처럼
한 문장을 시작하기 시작하면
그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
다음은 늘
예고된 눈물이었으니까.
대신 울겠다는 하늘이
진부하지만 고맙다.
대신 흐려주는 구름이 애틋하다.
그리고 들을만한 노래를 듣다가
어둠이 달을 밝히면
한 숨 자야겠다.
어차피 당신은 내 인생에 이미
들어와 있으니까.
Why bother to Love you
when you are already in my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