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하란듯이
감히 잊어지는 장면들이 무색하게
떠도는 감정은 기생할 숙주를 잃어간다.
자주 찾는 단어들은 그 희소성을 잃어가고
불러올 단어들이 없어지니 글과도 멀어진다.
감정을 사랑했으나
언제나 나를 향한 아픔으로 승화했고
이타적인 선택이라 자부했으나
그리하여 불행해진 내가
친절할 자유를 잃었다.
버스 좌석 (2.9)에 앉는 습관도
불규칙하게 내 시간에 드나드는
불특정한 다수도
커피 빠진 바닐라 라떼도
도수 없는 Jack Coke도
나를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과 사랑
타인과 자신
증명과 정의
음악과 영화
집착하던 프레임들이 증발한다.
고독은 말 그대로 독인지도 모르겠다.
때는 오지 않았는데 마음은 떠났고,
오늘은 왔다는데 내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난 언제나 글보다는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로
둘러싸여 있었다.
행복을 선택하기를 망설이는 이유는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배웠기 때문이고
선택하지 않아도 살아지는 세상에서는
고독도 그런대로 견뎌진다.
욕심나는 세상은 이미 내가 정해버린
프레임에서는 환상으로 정의되고
내가 환상이라 정의하는 세상은
누군가의 현실이다.
이 모든 것이 개념 정의의 편협한 자기 합리화의
산물이었다면, 그들의 세상과 나의 세상의 구분은
이미 없는 것이다.
나의 합리화의 축이 바뀌고
그리하여 가슴에 묻은
첫사랑은 비로소 잊을 수 있을 때 즈음에 난
행복을 선택하는 여유가 생길까.
공터에 상대 없는 시선을 던지며
얼마 남지 않은 아는 단어들을 엮어가며
나를 살려두는 중이다.
미세한 햇살이
답답한 공기를 숨길 재간이 없는
오전은 늘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의 혼란으로
기뻤다 섭섭했다를 반복한다.
가진 줄 알았던 당신의 마음은
가진 적이 없었고
자부했던 사랑은
여느 헤어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던 방식으로
나로 하여금 지는 벚꽃에 감정을 투영하게 한다.
오늘은 새로운 날이고
모든 가능성은 내가 제한하지 않는 한
나에게로 향하고 있다.
이 장면에 나를 푹 담갔다가
남은 하루는 잊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