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분명히 알았다.
나는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너무 자신 없는 모습을 보여준 주변의 타인들에게
내가 자신 있는 모습으로 어색하게 다가가기가 어색해서
계속 힘든 척, 못하는 척, 자신 없는 척
연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잠시 고민했다.
이는 시간이 갈 수록 더 뻔뻔하게 나를 거짓으로 포장했다.
내가 나를 속이겠다는 모습이야말로
내가 나를
미워하게 만들었다.
행복하면서 불행한 척,
살고 싶으면서 죽고 싶은 척,
잘할 수 있으면서 못하는 척,
안 괜찮으면서 괜찮은 척,
외로우면서 안 외로운 척,
이 모든 모순 속에
나의 당신들은 나를 뭘로 알고 있으며
당신들의 나는 당신들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어야 하는가.
의 답은
이미 다 알고 있다.
때로는 모두가 "모름"의 "앎"에 중독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
모르면서 아는 척하는
그렇게라도 해야 덜 손해 보는
관계들의 삭막함.
그래도 난 더 솔직해질 것이고
더 찌질해질 것이고,
더 초라해질 것이고,
더 아플 것이다.
여기에서 반전은
혼자 생쇼 아닌 생쇼를 한다.
관객은 이미 없는.
연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