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어떤 특별하게 소중한 사람이 될 준비가 안되었다는 핑계는
나이를 적어야 하는 칸에 숫자가 늘어갈수록
핑계가 아니라 잔인한 팩트가 되어가고 있다.
라고 정의할수록
내 앞에 버젓이 나타난 누군가를
잃어야 하는 사람 칸에 넣고는
몇 달을 울적해하며
러닝머신 위에서 속도 2를 유지하며
정처 없이 걷는다.
추워지니 바깥에서 방황할 수가 없다.
어제 ebs 토요명화에서
"사랑은 블랙홀"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하루하루가 늘 똑같아빠진 삶을 살기에
똑같아빠진 시선으로
똑같아빠진 패턴으로 하루를
클리넥스 휴지를 뽑아쓰듯이 쓰고 버리는 주인공은
물리적인 현실이
단 하루
"그라운 호그 데이"에 갇혀버린 삶을
살게 된다.
그의 똑같아빠진 삶을 사는 논리에 의하면
그렇게 물리적인 날들이 똑같아도
그는 똑같은 패턴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그는 그가 날짜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로는
그 하루를 자기 멋대로 단 하루도 똑같은 식으로 살지 않는
이전의 논리와는 모순된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뻔하게 보게 된 이유는 그렇게 살고 싶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자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가져온 가치관에 의해
그러나 그는 그 블랙홀에 갇힌 이후로
한순간에
어떤 식으로 살아도,
심지어 감옥에 갇히게 되어도
다음날이면 어제의 침대에서 일어나 똑같은 날을 맞이하는 것이다.
이는 내가 자꾸 사랑할 기회만 생기면 다음으로 미루고,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든 밀어내기 바쁘고,
마음이 열리면 어떻게든 닫으려고 하는 데서 자기 통제를 찾으려는 심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오늘 뜨겁게 사랑하더라도 내일까지 연루되지 않아도 되는 그 자유 때문에
고질적인 망설이고, 후회하는 연애 패턴에서 일시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라면
이는 다시 나의 깨달음을 원점으로 돌리고 만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정녕 계속 누군가를 알아가야 하는 시간과 과정인 것일까.
나는 타인이 무겁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여기게 하는
세상을 보는 나의 시선이 가장 무거운 것만 같다.
무한 반복도 인류가 겪어내야 하는 일련의 지루한 패턴이고
그 무의미일 수도 있는 시간을
유의미로 바꾸는 것도 인류에게 주어진 광활하고
가장 섹시한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