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도의 향기
이
립스틱에서
이런 향기가 나는 줄 몰랐다.
조심스럽게 입술에 바르던 그때에는
나지 않던 아주 짙은
아주 깊은,
감정이 내는 향기였다.
향기도 거의 없고
립스틱으로서의
매력이 없어서
버리기 전에 낙서를 하다가
갑자기
이 립스틱의 다른 매력에
잠시 취해 있다.
이렇게 향기가 좋았는데 왜.
너는 코팅된 스틱의 표면에
너의 향기를 가두고 있었을까.
이런 향기를 품고 있으면서
너는 왜 빳빳한 정장에
너의 향기를 가두고 있었는가.
립스틱이 망가진 상실감과
이렇게 발견한 그의 매력
사이에서
애꿎은 글자만 보고 있다.
그 글자와 함께
진한, 그의 향이
6 월 17 일
13:42
에 부는 바람에 진동한다.
부서뜨리고 나서야
난 비로소 너를 만나는구나.
종이에 짓이겨지며
분산되는 자신의 본래 향을
그렇게 황홀하게 발산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부서짐.
그 농도가 내는 네 향기에서
나는 한 발자국도 떠나고자 하는 의도가
생기지 않는다.
오늘 남은 스케줄은 여기서.
여기 너의 향기 앞에서
하루 종일.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따로 있는 것일까.
(이
립스틱은
색연필이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본래
감정의 농도를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비로소
이 정도의 향기를 낼 수 있는 지도.
내가 보던, 알던,
타인은 가장
타인이 지루한 이유는
문득
내가 알던 사람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얼마나 매력적이고
내 눈 앞에서 만큼은 아니었더라도
가시지 않는
내 곁에 머무는
이 향기가
고맙다.
“아직도 떠나지 않은”
이 향기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