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더라
개인은
자기 방어 기제의
복합체인 것 같다.
한 공간에 10 명이 있으면
그 공간은 10 개의 다른 현실이
모여 있는 것이다.
그 10 개의 현실은
그 “공간”이 제공하는 이익을
공통점으로 일시적으로 모인
집합체이며
그 “구성 현실”은
실시간으로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모양을 달리하지만
그 성향의 색깔은 보수적인 방식으로
더 진해진다.
하나의 공간을 정의하는 데도
아주 모호하고 애매한 정의가 난무하는데
몇 조의 공간이 실재하는 이 세상은
어디까지 애매해야 하는지
그 한계치를 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확실할 뿐이다.
현재. 시각. 나의 목소리. 에 상대하는 존재.
그리고 통화(currency) and google map...
그리하여 내가 정의하는 최소한의 현실은
이다.
몇 인치만 달라도
다른 각도로 목적지가 달라지겠다는
우리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를 지나간다는 것은
불필요한 우연인지
절묘한 인연인지
목적지에 결국은 함께 있는지의 여부가
만남의 성질을 아주 나중에 정의하고 있다.
이들은
낯선 세상에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한
일련의 각기 다른
보호막을 지니고 있어서
최후의 수단인
헤어짐을 우선순위로 택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이전 세대와 달리
부득이하게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맡거나
서로가 지나치게 상호의존적인
방식으로 집단에서 중요한 일원으로
치부되지 않는 현대인들은
이별의 유전자를 타고난 듯 보인다.
더 잡으려 하면
집착이고
놓아주려 하면
가벼운 사람 취급을 당하는
보장받지 못하는 개인들은
혼자의 삶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혼자의 삶이
익숙해진다는 것은
개인의 방어벽이 두꺼워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자기가 세운
만리장성으로 인해
고독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우리가 할 일은
가지고 있는 “자기 인생”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것이니까.
이 삶에
꼭 누군가를 곁에 두어야 한다는
조항은 제도가 만들어내었을 뿐이다.
그리고 개인은 그 조항을 선택할 권리를
가진 것이다.
타인이 가장 덜 중요한 방식으로
언제나 타인의
“함께함”을 외주 하겠지만,
함께함이
언젠가
나의 것일 날이
올 것이란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사람이더라.
그를 사랑할 수 없으니
그의 광기를 볼 수밖에.
Thought was Love
though was Life
He wouldn’t let me love Him.
maybe he, too
is only a hu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