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was Destined to Lose you
Ego를 환상하지 않은지 오래다.
자아의 대부분은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집단의식에 종속 및 분리되는 방식으로
나를 타자와 구분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내 일련의 행동과 의도를 조종하는 건
좋아하는 사람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은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특별히 뭘 좀 안다고 해서
마트에서 더 할인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은행 창구 순번이 바뀌는 것도 아니었다.
한국인이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10살 어린 직장 선배보다 그 직장을 더 잘 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놈의 경험.
경험을 더 한다는 것은
삶의 기반의 형태가 함께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어야
제 몫을 하는 것 같다.
텔레비전을 보며 간접 경험을
백만 시간을 하더라도
전 세계를 돌아다녀서
이 세상 사진을 다 갖고 있다 하더라도
생계와 연결된
피로함의 수치, 월급날,
월급의 출처, 무엇을 매개로
나에게 돈이 주어지는지에 대한
정보는 그 둘 사이의 연결 고리가 없는 이상
별개의 이야기였다.
그리하여 더 경험한다는 것의 정도도 모호하고
더 안다는 것의 근거도 불투명하고
더 사랑한다는 말의 진정성도
그 화자의 자기애 정도에 그치는
자기 편협성을 아주 그럴듯하게 포장한
Social protocol
같이만 느껴진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을 줄 알았는데
안 외로운 줄 알았는데
겁 없는 줄 알았는데
못될 수 없는 줄 알았는데
그를 숨길 수 있다는 자신을 믿을 줄만 알았지
벌벌 떨고 있는 자기를
안아줄 여력은 안되었나 보다.
받은 적 없는 사랑을
줄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인지도 몰랐다.
자기가 받아본 적 없는 것을
준다는 것은 척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비로소 내가 지쳐서
사랑한다는 너의 손을
놓았을 때인 것 같다.
미안했다 사랑하는 척해서
사랑했다 미안할 수 있을 만큼
수평선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수평선을 바라보는 동안.
이렇게 오늘 아침이 내게로 왔고,
오늘 아침은 밤의 어둠에서 나를 풀어주었다.
더 해주고 싶은데
내가 부담스러울 당신에게서
멀어지는 방식으로
당신은 나를 그리워하게 되겠지만
그리움에 익숙하게 되면
함께함이 환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
내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
고 생각했다
이 순간 나 또한
생각만 할 줄 아는
바라만 볼 줄 아는
겁쟁이
인간일 뿐이었다.
Maybe I’m destined to Los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