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한 적 없는 것 같다.
익숙해지는 바람에 오늘도 마셔야 할 뿐이다.
술을 좋아할 이유는 애초에 없었던 것 같다.
사회생활이라는 개념에서 배척되고 싶지 않기 위해
오늘도 마셔야 할 뿐이다.
혹은,
일단은 발을 뺄 수 없는 곳에서
내 정신을 해방시킬 권리를
소주 뚜껑을 "딱" 돌리거나
캔 맥주를 "탁" 따는 데서 찾는
버릇을 들였을 뿐이다.
그렇게 돌리거나 뜯고 나면
역한 알코올 향에 일단은 항복을 할 뿐이다.
그리고 어제 마셨던 주량대로
오늘도 "딱" 마셔본다.
살아있음과 살지 않음의 절묘한 경계 사이에서
나는 갑자기 감기가 들고,
갑자기 안 아프던 데가 아프고,
늘 먹고 싶던 것이 당기는 레퍼토리를 반복했다.
때로는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해
죽음이라는 단어를 억지로
내 context에 주입하곤 했다.
무료함보다는
극적인 아픔에 중독되었는지도 몰랐다.
아...
프다.
증거가 없을 뿐이다.
그래서 푸념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보면 그 푸념에 지배된다.
그러다 보면 난 영원히 행복할 수 없는
개념의 루프에 들어선다.
그냥 나오면 그만이다.
나와서 너무 행복할까 봐 겁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제 만난 사람과는
어제 "그" 이야기를 한 적 없는 것처럼
"또" 그 반복되는 대화가 시작된다.
내가 허락한 적도 없는데
어제 했던 이야기를 또 하기 시작한다.
나 또한 어제 했던 말을 또
하면서 "나의 타인"은 마찬가지로
어제 했던 이야기를 저 여자는 또 한다고
속으로 말을 하고 있겠지.
그러면 어떤가.
어제 떴던 해도 오늘 뜨고
어제 떴던 달도 오늘 뜨는 바람에
우리가 오늘 서로를 마주 보고 있는데.
그러면 어떤가.
그 바람에 당신과 내가
살아있음을 꾸준히 증명하고 있는데.
그러면 어떤가.
오늘 날씨가 이렇게 좋은데.
아프다.
그런데.
아프다고 이야기할 상대가 없고,
말도 잃어버리고,
알던 단어도 없어지면,
나는 조용히,
내 몸은 조용히
자기의 평화를 찾아갈 것이다.
시.
끄럽다.
내가 하는 혼잣말에
귀가 아프다.
입을 연 적도 없는데
시끄럽다.
삶과 죽음의
없는 경계에서
어제 하던 일을 하고,
어제 먹던 밥을 먹고,
일단은 자야겠다.
그럴 수 있다는 사실만이
때로는 인간의 삶을
증거 없는 방식으로 증명한다.
어제 봤던 사람을
또 보는 방식으로.
어제 했던 일을
또 하는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