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바라보듯이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싶다고

by Romantic Eagle

생각했다.


단 몇 분이라도.

1초의 피함도 없이.


그 어떤 부담도,

그 어떤 저항도,

그 어떤 반사도,

그 어떤 거리낌도,

그 어떤 망설임도,

그 어떤 신경전도,

그 어떤 의심도,

그 어떤 억지도,

그 어떤 어색함도 없이.



아주

오래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아기의 눈을

거리낌 없이 바라봄과 동시에

그 눈빛과의 마주침 속에서

잊고 있던 "자신"이라는 존재를

느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아기의 눈은

상대에 있는 물체를 바라보는 것임에도

그 눈을 의식하는

이 쪽의 "자신"은

그 시공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에

새삼스럽게 접근한다.


아기를 바라보는 것이

자연을 바라보는 것과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그 자연의 공간에 "사람의 눈"이 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우리는 그를 의식한다.

그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로 인해 "자신"과 밀접해진다.



"매일"

"거리"에서 만나는

"거래처"에서 스쳐 지나가는

"식당"에서 마주하는

"카페"에서 만나는

"마트"에서 마주치는

모든 "눈빛"들은 밖을 향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모두 자신을 향한 눈빛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눈빛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1차 관문의 역할을 하는 "눈"

의심의 눈초리들,

그리고

부딪히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상대편에서 오는

"눈"들의 좌회전, 우회전 신호를 살핀다.



어렸을 때는

그러한 눈빛들이 위협이었다.


지나치게 자의식에 빠져있을 때라

모든 눈빛들이 내가 나를 생각하는 대로

가두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난 날이면

그 눈들의 환영에서 나를

흔히 말하는 "타인의 지옥"에 가뒀다.



그러나 타인은 이미 없다.

타인의 존재에 상대하는 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시선과 시공간의 교차로에서

타인에 의해 존재하는 듯 하지만

타인은 곧 자신인 방식으로

타인으로 인해 결론적으로 "자신"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자신의 KingDom에서

자신의 QueenDom에서.




내 속에 네가 너무 많고

네 속에는 내가 너무 많다.



그리하여 "네"가 "내"고

내가 "네"가 되어버린 관계들이

숱하지만

그 속에서 결국은

"자기"만 살아남는다.


결국 "자기"만 죽게 되는 것과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죽음까지 확장해서 본다면.



쉽게 말해서

닥친 상황이 급하다면,

우리는 그 상황의 해결 여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철학적 존재론,

사회적 존재론 등을 떠나서



Mind Your Own Business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화장실이 급한 자신이 할 수 있는 생각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된다.



장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될 때,

자신이 가질 수 있는 여유의 개수를 생각해보면 된다.



다 자기만 바쁘고,

다 자기만 힘들고,

다 자기가 가장 위대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즉, 각 개인이 이 세상의 중심이기에

이 세상에는 70 억이 넘는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무 힘들 때는

그 matrix에 있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기쁨에서 헤엄칠 때에도

그 또한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었다.



20세기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모든 것은 원자로,

즉 서로 조금 떨어져 있을 때에는

끌어당기지만 서로 압착되면

밀쳐내면서 영구 운동을 하며

돌아다니는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라고 말하며

우리들이 약간의 상상력과 생각을 더하면 이 한 문장에서

세계에 관한 막대한 양의 정보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원자로 이루어진 우리들.

그리고 그 원자는

아름다운 눈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끌어당기기도 하고

밀쳐내기도 하며


영구적으로 우리를

인간이라서 겪게 되는

딜레마, 도그마 등의 일종의 고립 상태를 경험하게 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그 고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한한 기회에 노출되어 있다.




결국 사람의 눈을

오래도록 바라본다는 것은

even

거울 속 자신의 눈을

거리낌 없이 오래도록 바라본다는 것조차

쉽지 않음에서

그렇게 집착적으로 원할만한 이유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아주 다양한

아주 복잡한

아주 복합적인

아주 치사한

아주 가벼운 모든 가능성 속에

단 몇 억 분의 일초라도

누군가가 나의 눈을 마주할 때

내가 때마침 그 눈을 피하지 않았던

순간.


the very moment.


그 순간이

우리에게는

자유이자

기회이자

새로움이자

또 다른 길일 것이다.



“어쩌다 마주친”

단순한 eye contact에 불과하겠지만.



it was NIce

meeting you.

and even Nicer

that we had Good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