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현재 상태라면
내가 끌어들이는 사람이 곧
나의 현재 상태인지도 모른다.
밀어내지 않을테니 필요한 존재일 수도 있고,
거부하지 않을테니 내가 도움을 줄 수 있을 수도 있고,
마주보고 있을테니
시간의 거듭과 함께
서로에게 정이 들 것이고
곧 비슷한 색의 적지만 끈끈한
공동체가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그를 밀어내면서
나의 형태가 변형을 시작했다는 것은
Obviously 드러난다.
그 변형의 소용돌이에서도
내가 아직도 그의 관심을 바란다는 것은
관성의 잔상일까
이미 마음이 뺏겼다는 증거일까.
잊고 사는 법을 배우려 한다.
그러나 꼭 그렇게까지
불친절하게 끝날 필요가 없는
관계들이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지어내겠다는 기억
덜어보겠다는 책감에서
비롯된 환영이라 하더라도
그냥 조금 더 나의 잔상에
머물기를 바랄 뿐이다.
합리화를 합리화해야만
꼭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나를 굳이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완전 반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