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손으로 깨부수고는
그리워할 정도로 뻔뻔하려면
얼마나 자기 망상에
사로잡혀 있어야 할까.
물론 이 현상의 피해자이자
수혜자로서
완벽한 철벽 수비 안에서
고독을 제 1 대 정체성으로 삼고
안전한 지루한 단조롭고 간사로운
자기 퀸덤에서 제 1 대이자 마지막 왕으로
군림하지만
정작 관심이 고파서
어떻게든 시선을 남모르게 끌어보려는
심산은
봄여름가을겨울이
거듭할 수록 나 자신에 의해
제대로 외면당하고 있다.
“대체 왜 저래”
그리고 늘
이성의 관심은
저 평가 하며 내 스스로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높이려 의도하고
이성의 무관심은
나의 자존감의 마이너스 zone 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나에게 대놓고 증명했다.
이런식으로 한 개체는
자신의
자신-감의 균형을
어떻게든 유지하는 듯 보이지만
어느 쪽이든
타인의 실제 삶 속엔 어떠한 기록할 만한
자취도 남길 수 없은 방식으로
자신은 자신마저
일종의 환상의 잔해로 만드는 것 같다.
늘 이런식이다.
(이런 말에 매력을 느껴서
이렇게 사는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놓고
그래도 나에게 꾸준한
미련한 관심을 보이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그들의 진심을 증명해야 한다고 어디서
주워 배워서는
그 논리 또한
관계의 수지 역학적 원리를
벗어나지 않는 일종의
사회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제 곁에 남은 사람도 없고
남을 사람은 더더욱 없을 그물망을
쳐놓고는
I Am Awesome!
이라고 외치고 다닌다니...놀랍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해야하는 방식으로
나는 그 순진한 실수들로부터 나를 지켜야 했다.)
이를 가관이라 여기지만
정작 이 그물에서 나가지 않는 이유는
대체 나의 멍청함에
얼마나 고착되어 있다는 것이지.
어떠한 어조로 나에게 충격을 줘야
“태도”를 고칠 것인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를 중계하는
나의 존재를 지나치게 의식함에서 오는
나의 처음 자아에 대한
무의식적 충성인 것인가.
서른 둘, 혹은 서른.
내가 갇힌 덫에서 나오는 방법은
내가 안다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아는 시점과
그를 넘어선 삶의 지평선 사이에는
늘
타인을 믿을 줄 아는
자신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었다.
Goodbye my Next best Yesterday
또 누군가를 놓쳤다.
어쩌면 고독의 치명적인 불안함에
중독되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에 빠진 상태의 완벽한 안정성은
너무 쉽잖아.
손을 잡고
안고
눈과 입을 맞추는
그 치명적인 달콤함과
존재의 무모한 고독이 관통하는 아련함
사이에서
나는 아직도
차마 행복할 수가 없다.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