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로그아웃 되었습니다. 당신으로부터
알람을 다 꺼봤다.
카톡, 이메일, 유튜브, 인스타, 페북 메신저
홈 버튼을 누르면 몇 개씩 떠 있던
그 일련의 모양새가
마치 내 가치의 무게였던 것처럼
텅 빈 채,
무심하게 시간만 떠 있는
화면이 나를 무안하게 했다.
직접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들이
내 계정들이
인터넷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가정을 해 보았다.
가기 싫다는 생각으로 가서
듣기 싫다는 생각만 1 분에 6번 넘게 하는
음악을 찍 소리 못하고 들으면서
정말 하기 싫다고 생각하며 러닝 머신을 걷고
정말 이건 아닌데 하며 자전거를 타는
그 일과도 없애 본
나를 상상한다.
어느 누구도 전화나 메시지로
나를 찾지 않는, 그때
나에게서 사라질만한 정체성은 무엇일까.
나는 정녕 타인의 시간에
설정된 알람 소리와
그들의 빈 시간에
그들의 company가 되어주고는
다시 공허한 연못가의 돌 위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게 전부여야 하는 건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하는 질문이었다.)
내 삶을 아주 단순화하고
사람들과의
Contact을 줄일 수 있는 만큼 줄여보면
나의 사회적 가치를 깨닫는 데 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타인이 부여한 “필요”로 날 정의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나의 무언가가 없을 때 타인이 나를
궁금해하는 건, 나의 근황이 아니라 그들의 빈 시간을 얼마나 즐겁게 채워 줄 수 있는지에 대한
나의
빈 시간이라는 것.
모든 의도의 근본이 드러나는 시점이었다.
타인들은 그렇게 모두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나를 포함해서.
나 또한 나의
빈 시간을 기준으로 타인을 찾았기에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때마침 시간이 너무 많아서
나의 빈 시간이 타인들의 빡빡한 시간의 틈에서
어떤 가치를 가지는 지에 예민하게 관찰할 기회가
생겼기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나를
얼마나 허락해야 좋은지
헷갈리는 상황에 놓였을 뿐이었다.
꽤 의도적으로 선택한 상황이었지만.
여기서의 반전은
아무 일이 없다보면 누군가가 만나자고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거절할 이유는 사실 없다.
whether they like it or not.
분석을 넘어서는 것은
Truth ,
진실이다.
그리고 진실이 아프더라도
극복하는 방법은
진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깨닫게 된 자신이라는
진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을 찾지 않는다는 것.
직면한다는 건 두려운 일이다.
나의 보고 싶지 않은 모습도 똑바로 보면서
견뎌야 하니까.
그렇게 빚어낸 자신은 결코 약하지 않을 방식으로
내일을 살아낼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나는 나의 나약함 주위를 맴도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약한 자신 주위에는
늘 돌봐주는 누군가의 보호막이 있었으니까.
나를 드러내서
나를 책임질 때가 왔다.
이제 누구도 날 보호할 수 없을 정도로
커버렸으니까.
자존심이든, 자만심이든, 오만함인,
옹졸함이든, 비겁함이든,
나를 챙겨주는 누구도 나의
그런 모습까지 견뎌줄 이유가 더 이상 없으니까.
나로부터 완전히 로그 아웃을 하고자 한다.
그 방법이 나의 산산이 부서진 조각들을 다시 맞추는 데 있어서
어제의 나와 같은 모양으로 만드는 실수로부터
날 보호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