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상에서 읽어야 할 책은 다 읽은 것 같았고, 모든 감정의 얽힘이 비로소 다 풀린 듯했고, 경험해야 할 경험은 다.... 했다고 마음의 도장을 찍었고, 더 흘릴 눈물은 비로소 없었고, 이번 생에 알아야 할 사랑은 다 알아버렸고, 들어서 감동할 노래는 더 이상 없었고, 더 봐야 할 명작도 이 정도 봤으면 되었고, 더 이상 먹고 싶은 음식도 없었고, 채널을 돌리다 돌리다 돌리다 텔레비전을 비로소 끄고 나서도. 잠을 그렇게 질리도록 자고 나서도
3. 아침을 어김없이 먹고 있었고,
뉴스는 뭐하러 트는지 모르겠지만
내 손으로 이미 틀어놓았고,
주유소에 들러 주유를 하고 있었고,
잠시 쉬는 시간에는
또 흥미가 생긴 “니체”의 글을 읽으며
감동하고 있었고,
새로 나온 노래를 유튜브가
업데이트를 해주고 있었고,
밤이 되니 송구하게도 잠이 오고,
4. 또 설레게 하는 사람도 생기더라.
딱 그렇게 마음같이 선언한 대로만
살아지는 것도 아니더라.
(적나라하게 아름다운 해변의 지는 해를 바라보며, “그래, 이걸로 충분하다. 돌아가서도 그리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라고 선언했지만, 지는 해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집 앞의 어둑한 “밤을 알림”에 난 이미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괴리감을 괴리로 느끼지 않고,
그 해변의 sunset과 다를 것 없는
언제나 상대성의 논리로 인해
그리워할 대상은 정해져 있었지만.)
6. 가족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에
잠긴 생각의 환영에서 너무도 쉽게 로그 아웃되고, 공허함이 공명하는 집 안은 어김없이
텔레비전 속 불특정 타인이 채우더라.
7. 내 목소리를 들어본 지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혼자 내어보려 해도 낼 수가 없기에,
내 목소리로 채워서 태운 마음은
재가 되어서는
바람의 것이 이미 되어
미안하지만 나는
너를 대신할 다른 사람을 향해
웃고 있었다.
8. 반복 학습이 없었으면 이렇게 쓸 수 없었을
글들이 어색하다. 반복, 다시 찾아오겠다는 내일,
다시 감아야 하는 머리가 가르쳐 주는
이틀이 지났음이 이토록 야속할 수가 없다.
9. 너를 잊을 수 있음도 증명된 2 년이 지났음을
부정할 힘이 없어서 기억할 힘도 없지만
어떻게 하면 집착이 아닐 수 있게 보일지
고민을 해봐도,
집착으로 정의하기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더 잘 알 뿐이다.
10. 믿기 힘들지만.
난 내일도 살 것이다.
아침도 먹고, 울어야 하면 또 울 것이고,
또 글을 쓰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주유도 하고,
생각하다 엄마의 잔소리에 생각을 멈추고,
세 시간째 누구의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텔레비전을 켜고 영화를 볼 것이다.
모레 정도면 머리를 감고, 5 일 정도 뒤에는
목욕탕도 가야겠다.
나에게 내일이 있음은
나의 당신을
내 기억 속에 하루하루 더 둘 수 있는
bonus time 일까.
내가 오늘도 이 세상에 있었다는 것을
“증거” 하는 것이기에
믿기 힘들지만,
오지 않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