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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ntic Eagle Apr 29. 2024

내 사람을 찾고 있지만
내가 내 첫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살 수는 없었다

즐겨찾는 

라이브 방송들이 있지만

내 글이 읽히는 경우의 수가

적으면 

꾸준히 참여하기 힘든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한다. 



방송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내'가 없는 맥락에서 

오래 버티기 힘든, 



타인이 주인공인 

그 시공간에서 

내가 얻고 싶었던 것은




'나'였을까. 




왜 '나'를 

타인의 '채널'에서

찾으려고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보여지고

읽혀지고

언급되는 방식으로 

우리는

1차적인 자아의 

충족을 얻는지도 모르겠다. 





2차까지는

가지 못하는 

1차만 맴도는 겪이지만, 




그 순간 순간

얻게 되는 경험괴

잃게 되는 경험은 반드시

있었다 






실생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주인공이

아닌 곳

내가 주인이 아닌 곳에서는

빨리 계산이나 하고

나와야 하는 법. 






그러나 

내가 주인이든

남이 주인이든,






교류해야 하는 

필드에서는 

웃고 지나갈 재간은 

필요한 듯하다. 




예를 들면

아파트 엘리베이터 같이. 






한 두 마디 안 읽히는 건

괜찮은데 

한 번 읽히려고 

같은 내용을 

몇 번이나 적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 또한

꽤 노력하는 인간이구나 

관심을 받으려고. 

싶다. 






대화의 본질은

누군가 반응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그 말을  

진심으로 했다는 것에 

있는지도 모른다. 




진심이든, 

거짓이든, 




어차피 오래 머물지 

않을 뿐이다.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진심으로 

거짓으로 받아들이면

거짓인

모든 진실의 

부재 속에서 




나만 아는 진실은

그렇게 나에게나 진실인 방식으로 

나와 함께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어쩌면



내 사람은



내가 진심이라고 하면

진심이라고 받아들여 주고

내가 거짓이라고 하면

거짓이라고 받아들여 주는 

그 아량의 유무에 달린 것 같다. 





일단은 

내 편이겠다는

'의지'.





설사 

거짓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진심이라고 말을 하면 

알았다고 하고 

내 눈이 거짓말이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알겠다고 말을 들어줄 사람.




그런데 

그 사람을 

타인에게서 찾기 시작하면




비이성적 집착과 

오해가 시작되는 것 같다. 






그 사람이 

나여야 했다. 





그런 타인이 있다면

세상은 

아주 괜찮았다. 






그러나 타인까지 가지

않더라도 

내 안에도 그런 힘은

충분했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계속 삶을 시도하고 

내일을 알아보는 이유 중

하나는 




그 무수한 

외면 속에서 

나를 마주할 여유가 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그 결과는 

어차피 내 통제 권한 밖이라면




산다는 건, 




그렇게 살아있는 동안의 무수한

시도와 착오와 경험에 의해

지어지는 개인의 

지혜의 합인지도. 







내 삶의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을 타인에게 

돌리지 않을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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