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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Apr 20. 2019

어느 목격자의 고백

112에 신고를 했다. 새벽 3시였다.


112에 신고를 했다.

새벽 3시였다.


실은 신고를 할까 말까 계속 고민했다. 친한 사람들끼리 술 마시고 욱해서 말싸움을 하는 건가, 아님 길 가다가 서로 시비가 붙은 건가. 혼자 별 상상을 다 했지만, 계속되는 욕설에 저러다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베란다에서 한참을 지켜보며 망설이다가,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112에 신고를 했다.


8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낮에는 여전히 덥지만 밤에는 선선한 바람이 창을 타고 조금씩 흘러 들어왔다. 새벽 공기를 쐬며 원고를 쓰고 있는데, 창밖으로 고함이 들렸다.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아파트 2*층인 내 방까지 그들의 고함이 메아리처럼 전달됐다. 처음엔 그냥 말다툼이라 생각해, 노래 볼륨을 높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새벽의 소음은 더 소란스러워졌다.




소리는 아파트 옆 성당에서 들렸다.

성당 뒤쪽 건물에 몇 사람이 가로등 아래에서 싸우고 있었다. 처음엔 말로만 싸우는가 싶더니 점점 싸움이 과격해지는 것 같았다. 그들 중 두 사람의 감정이 욱했는지 서로 얼굴을 아주 가깝게 대고 소리를 질렀고, 나머지 사람들은 두 사람을 떼어 놓으려 애를 썼다. 그들은 지금 싸움을 40분 가까이 반복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들이 걱정되었는데, 이젠 내 안락을 방해하는 그들에게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점점 더 크게 욕 하기 시작했고, 나는 결국 112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5분이 채 되지 않아 도착했다. 경찰의 등장에 그들 모두 놀란 것 같았다. 혹여 경찰에게 과격하게 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들은 순순히 경찰의 말에 잘 따랐다. 몇 사람은 경찰과 대화를 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벤치에 드문드문 떨어져 앉았다. 경찰은 짧은 조사를 마치고 돌아갔다. 그들은 더 이상 고함도 욕설도 지르지 않았다. 그저 서로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누군가는 성당을 바라보며 걸었다. 동네는 다시 조용해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고요해졌다.




아침에 일어나 식탁에서 지난밤 일을 얘기했다. 처음으로 112에 신고해봤다고. 신고를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요즘 세상이 워낙 험악해 혹시나 싶어서 신고를 했다고. 나름의 책임감과 뿌듯함을 섞어 얘기하는데, 아빠가 성당에 장례식장 있잖아,라고 말했다. '성당 뒤쪽 건물에 장례식장 있잖아. 거기서 무슨 일 있었던 것 아냐?'


장례식장이라니.


어젯밤 했던 상상 중에 감히 들어있지도 않은 경우의 수였다. 깜짝 놀란 나는 아파트 뒤 성당에 장례식장이 있냐고 재차 물었고, 아빠는 오히려 몰랐냐고 되물었다. 그렇다. 그들이 싸우고 있던 곳은 장례식장 앞이었다.


새벽 3시에 성당 장례식장 앞. 그 앞에서 다투고 있는 사람들. 그제야 언성을 높았지만 누구 하나 바닥에 뒹굴지 않았던 것과 경찰이 다녀간 뒤 나란히 벤치에 앉아 고개를 떨어뜨린 것이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읽혔다. 새벽 3시 성당 장례식장 앞에서의 싸움.


어쩌면 내가 목격한 것은 취객들의 싸움이 아니라,

누군가의 슬픔이었을지도 모른다.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고 터지는 울음은

얼마나 큰 아픔일까.


주변을 의식하지 못하고

고통을 외치는 사람의 절규는 어떤 심정일까.


내 새벽의 안락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나는 그들의 아픔을 쉽게 지나친 게 아닐까. 그들의 몸짓을 세밀히 보았더라면, 그들의 울음소리에 조금 더 귀 기울였다면...... 지난 새벽의 그들에게 미안해졌다. 혹여나 내가 그들의 슬픔을 가중시킨 게 아닌가 싶어서.







2019년 4월 20일 청민의 말:


이번 주는 바빴습니다. 정신이 없었습니다.

요즘 시간이 그렇게 갑니다. 빠르고, 정신없이.


여유가 없지만 한 편으론 기쁩니다.

속에서 글감이 살아서 자꾸 꿈틀거리거든요.

요즘 다시 뭔가를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쓰기를 많이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운명처럼 다가 올 하나의 문장을 기다리고 있는 제 모습을 보니

여전히 저는 글을 사랑하는구나 싶습니다.


몸살이 조금 났습니다.

건강이 최고입니다.

때로는 상황과 다른 사람보다 내가 먼저가 되어야 한다고,

요즘 자주 생각합니다.


이번 주도 수고 많으셨어요.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저희는 다음 주 토요일에 또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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