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Apr 29. 2019

썩은 복숭아를 잡는 사람

조용히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사람, 가만히 자신의 몫을 양보하는 사람.

영화 <시라노 연애 대작전> 속 썩은 복숭아 작전을 보며 D를 떠올렸다. 극 중 남자 주인공은 좋아하는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일명 '썩은 복숭아 작전'을 쓴다. 사람들이 탐스러운 복숭아를 모두 가져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마지막 남은 썩은 복숭아를 의도적으로 집어 먹으며, 여자에게 자신의 배려심을 어필하기 위해 미리 계획한 작전이었다.


D는 영화 속 남자처럼 썩은 복숭아를 잡는 사람이었다.


영화 속 남자처럼 좋아하는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런 심성을 타고 난 사람이었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갈 때마다 친구들의 수저를 먼저 챙겨주고, 컵에 물을 따라주는 사람.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먼저 고를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먹고 싶은 걸 고를 때까지 기다려주는 사람. 그러니까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다. 어디에도 모남 없이 무난하게 잘 어울렸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종종 모두에게 친절한 D의 모습에 불편함을 느꼈다. 남의 입장을 돌보느라 자기 몫은 제때 잘 챙기지 못하는 것 같아서 때로는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새 내게도 그의 변함없는 친절은 익숙한 것이 되어버렸다. 고마움은 습관처럼 굳어졌다.


그날도 D를 포함해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간 날이었다. 좁은 가게에서 다들 두꺼운 외투를 정리하느라 분위기가 분잡했다. 다들 뭘 먹을지 고르면서 자기 외투를 정리하는데, 그는 친구들의 수저를 챙기고 있었다. 먼저 자리를 잡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에게 컵을 내밀었다. 그는 내게 물을 따라 주었고, 나는 목이 말랐던 터라 단숨에 물을 들이켜고 다시 그에게 컵을 내밀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재차 물을 따라주었다. 두 번째 잔을 비우고서야 아직 정리되지 않은 그의 코트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그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

마지막까지 썩은 복숭아를 내 몫으로 집었던 시절이.


내가 그를 보고 종종 불편하다고 느꼈던 건, 그에게서 예전 내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고, 지난 나의 친절을 당연하게 여겼던 사람들에게서 느낀 실망감이 떠올랐기 때문임을, 아무렇게나 의자에 걸린 그의 코트를 보고 깨달았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에게 나를 실망시켰던 사람들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미안함은 짜증 섞인 핀잔으로 둔갑해 죄 없는 그를 향했다. 야, 다른 사람들이랑 밥 먹을 때 매번 이렇게 젓가락 놓고, 물 떠주고 그런 거 하지 마. 네가 양보하면 나중엔 그게 당연한 줄 알아. 아무도 몰라준다니까? 그런데 그는 괜찮다고, 늘 하던 건데 뭐 어떠냐고 하고 웃어넘겼다.



썩은 복숭아를 집는 건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만날 때마다 그렇게 착해서 어디에 쓰겠냐며 농담 섞인 핀잔을 줬지만, 그는 그냥 그게 자기 마음이 더 편하고 좋단다. 뭐 저런 애가 다 있나, 아직 세상 물정을 다 몰라 그런가 싶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그가 멋져 보였다. 그도 고민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친절이 당연하게 여겨질 때마다, 굳이 이렇게까지 내가 양보해야 하나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의 친절이 더 값지게 느껴지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썩은 복숭아를 집는 사람이 되기로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년 만에 만난 그는 여전히 그렇게 산다. 바보처럼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으로 있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가 선택한 삶의 태도이니까. 그 같은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여전히 괜찮은 곳 아닐까. 조용히 누군가에게 마음을 쓰는 사람, 가만히 자신의 몫을 양보하는 사람 그리고 썩은 복숭아를 집는 사람. 오랜만에 만난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마치 난로처럼 온화하고 따듯했다. 따듯한 미소 속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까 어림짐작 해본다.





2019년 4월 29일 청민의 말:


한 주가 눈 깜빡 하니 끝났습니다. 어떻게 한 주가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이틀 늦은 업로드를 합니다. 이쯤 되면 프로 지각러라 고개를 푹 숙이게 됩니다.

이번 주 토요일엔 잊지 않고 오고, 앞으로 늦는 일이 생기면 그 전 글 댓글에 남기겠습니다.. :)

기다리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보냅니다.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로 수습기간을 마쳤습니다.

느리게만 가던 시간이었는데.. 어찌어찌 시간은 잘 흘러가고 있고, 저도 조금씩 적응을 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니 업로드 요일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제 마음의 여유의 문제였구나 싶습니다. 하하.)


월요일 아침입니다. 일터로 향하는 우리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여러분도, 저도 정말로 파이팅. 괜히 아침만 되면 입버릇처럼 파이팅을 외쳐봅니다.


한 주 잘 보내시고, 토요일엔 늦지 않게 오겠습니다.(굳은 다짐)



mail _ romanticgrey@gmail.com

insta _ @w.chungmin

댓글과 좋아요는 힘이 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목격자의 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