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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Apr 11. 2019

일기장 소동

모든 것은 다 그대로였다.

 

너거 첫째 딸. 내 다시 봤다.

일 년에 한 번 뵐까 말까 한 큰엄마가 엄마에게 전화가 와선 이렇게 말했단다.


날도 춥은데 바닥에 엉덩이 깔고 폐지 줍는 할머니 돕더라.

내 너거 딸 다시 봤다 아이가.


뜻밖의 칭찬이라 쑥스럽다가도, 대구에 아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은 터라 큰 엄마의 전화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기억에도 없는 일이 내게 돌아왔을 때의 당혹감이란. 좋은 것도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 쉽게 발견되는데, 나쁜 일은 쉽게 들킬 것 만 같다.




나는 비밀을 남에게 잘 말하지 않는 편이다.


누군가가 싫어지거나, 불만이 생기는 상황 같은 것은 대개 작은 일기장에 몰아 보관한다.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고, 남은 나를 나만큼 소중하게 여겨주지 않는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일기장을 기업의 비밀장부라도 되는 것처럼,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일기장을 ‘모신다’. 혹여 밖에 챙겨 나갈 일이 있으면 시간마다 가방을 열어 일기장이 잘 있는지 확인까지 한다. 나는 종종 일기장을 잃어버리면 속세를 떠나야 한다는 농담을 하곤 하는데, 농담이 아니다. 일기장이란 게 그렇지 않나. 감정이 그만큼 치솟지도 않았으면서 허풍을 떨기도 하고, 판단을 하기도 하고. 누가 읽기라도 하면 나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으로 취급할 확률이 놓고, 혹여 일기장에 등장하는 사람이 읽을 경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절교를 선언할 지도 모른다.


그런 일기장을 잃어버렸다.

바보처럼 잃어버린 지도 모르고 있었다. 언니 이거 두고 갔어, 라는 메시지를 받고서야 알아챘다. 지하철 바닥에 앉아 가방을 뒤지고 또 뒤졌다. 앞이 깜깜했다. 나는 왜 그걸 두고 왔을까. 보통 사람이 많은 곳에 일기장을 가져가지도 않는데 가져갔고, 혹여 가져갔대도 절대 꺼내지 않는데 그날따라 그 애가 종이가 필요하다는 말에 나는 일기장을 꺼내 찢어줬다. 왜 그랬을까. 일기장을 두고 갔다는 그 애의 메시지를 읽는 순간, 심장이 번지점프를 하는 것 같았다. 쿵. 내가 미쳤지. 쿵쿵. 손이 다 떨렸다. 발을 동동 굴리면서도 그 애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잘 챙겨두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불안해서 거듭 메시지를 보냈다.


그거 진짜 진심 절대 보면 안 돼.




그 애가 내 수첩을 열어볼까. 

보겠지. 아니야, 그래도 설마 보겠어. 

걔는 그런 애가 아냐. 또 모르지. 

판도라도 절대 열지 말라던 상자를 호기심에 열었잖아. 

호기심은 인간 본연이 가지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인데 걔가 그걸 이길 수 있겠어.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다. 당장 달려가서 수첩을 가져오고 싶었으나, 이미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버린 후였다. 다른 날을 잡으려 해도 서로의 일정이 맞지 않아, 일주일이나 지나야만 일기장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아아. 울고 싶었다. 눈물이 찔끔 나는 것 같았다. 그 애가 내 수첩을 왠지 펼쳐볼 것 같았다. 읽을 것 같았다. 정신을 잡고 일기장에 무슨 얘기를 썼는지 떠올리려 애썼다. 내가 그 애에 관해서도 쓴 적이 있나. 가장 최근에 쓴 게 뭐였지. 기억을 더듬거리다 아, 첫사랑에 관한 내용이었어. 차라리 뭘 썼는지 기억하려 애쓰지 말걸.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애와 내 첫사랑은 실제로 아는 사이었다. 나는 아까보다 더 울고 싶었다.


일기장을 받기까지 일주일 조금 안 되는 시간. 나는 문득문득 한숨을 쉬고,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했다. 그 애가 내 일기장을 읽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조금이라도 덜 나쁜 사람이 될건가에 대해서. 일기장을 그 애에게 맡긴지 3일째 되던 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 애는 내게 전화로 자신의 은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그 애의 고민을 들으며, 나는 안도했다. 그 애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다. 그 애가 나를 예전처럼 편하게 대하며 비밀을 털어 놓는다는 건, 내 일기장을 읽지 않았다는 증명 같았기 때문이고, 나도 그 애의 비밀을 하나 쥐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때 알았다. 나는 처음부터 그 애를 믿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는 걸. 그 애를 믿을 수도 있었는데, 그 애가 내 일기장을 열어보지 않았을 거라고 믿을 수도 있었는데. 그 애가 털어놓은 비밀을 나의 무기처럼 여겼던 순간, 나는 얼마나 치졸한 사람이었을까. 그 애가 내 일기장을 읽을까봐 두려웠고, 뻥튀기 된 감정을 읽고 나를 그저 그런 사람으로 판단해버릴까 불안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내 일기장 속 내용을 말할까봐 조마조마했다. 사람 일이란 언제 어떻게든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정작 믿을 수 없는 존재도, 가장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존재도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내 실수로 일어났던 일, 그 애가 일기장을 몰래 가져간 것도 아니었는데. 불안함 하나로 나는 오래도록 시간을 함께 쌓아온 친구를 아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걱정과 달리 일기장은 무사히 내 품으로 돌아왔다. 일주일동안 걱정했던 일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기장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 애는 여전히 언니, 언니 하며 다정하게 굴었다. 모든 것은 다 그대로였다. 하지만 나는 예전처럼 내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쉽게 말하진 못했다.




2019년 4월 11일 목요일, 청민의 말:


목요일 8시에 업로드 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니..

마음처럼 기억과 몸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목요일 업로드는 늘 아찔합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저녁에 글을 업로드 해야지 생각해놓곤,

퇴근과 동시에 정신을 놓은 듯 합니다. 까먹었거든요.

퇴근만 하면 왜 그럴까요. 정말 저 왜그러죠.


그래서 토요일 저녁에 찾아오려 합니다.

일을 다 마친 금요일, 정갈한 마음으로 글을 쓴 뒤

토요일 8시에 찾아오겠습니다.


토요일에는 늦지 않도록 노력해볼게요.

하하.


이번 주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나도 수고 많았단다, 토닥토닥.


내일만 잘 버티고,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mail _ romanticgr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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