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것을 기념하고 싶으신가요?
우리 집엔 <판도라의 상자>가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지만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손을 내밀면 꼭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그 <판도라의 상자>는 거실 한 가운데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데, 우리 집에서 이 <판도라의 상자>는 판도라에 엄마를 넣어 <엄마의 상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음 그 이유는, 엄마의 허락 없이 그 뚜껑을 열면 잔소리 폭탄을 맞아야 하기 때문. 엄마가 정말 정말 아끼는 추억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엄마의 상자>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그 네모난 상자가 아니다. 이 상자는 꽤 오래된 고 가구로 이뤄져 있다. 십오 년 전 쯤인가, 엄마가 한참 고가구에 관심이 많으실 때였다. 엄마는 장 하나를 사고 싶어 온 동네 고가구를 판다는 집은 다 뒤졌지만, 막상 살려니 온갖 핑계를 다 대면서 머뭇거리고 계셨다. 자신을 위해 쉽사리 돈을 쓰지 못하는 습관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용납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결국 <엄마의 상자>는 집에 들어왔다. 십오 년 전 그 어느 날부터 지금까지 <엄마의 상자>라 불리는 그 고가구 장은 우리 집 거실 한 가운데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가구가 처음 집에 들어오던 날, 엄마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엄마는 꽤 들뜬 목소리로 <엄마의 상자>를 맞았다. 고가구의 자리를 잡고, 엄마는 앉아 하루 종일 그 장을 마른걸레로 닦으셨다. 그리곤 엄마가 아끼는 컵을 차곡차곡 넣고는 자물쇠로 그 장을 잠그셨다. 엄마, 접시를 그 안에 왜 넣어? 저거 안 써? 엄마에게 물으니 엄마는 저 그릇은 쓰지 않을 거라고, 지금 있는 그릇 다 쓸 때까지 사용하지 않을 거라 대답하셨다. 그리고 한 말씀을 더하셨다. 아, 절대 서랍장은 엄마 허락 없이 열면 안돼!
사실 이제와 하는 말이지만, 그 컵들은 딱히 값비싼 것들이 아니었다. 엄마와 아빠가 결혼할 때 선물 받은 (누가 보아도 옛날 디자인인) 못난이 감자모양 커피잔 세트, 내가 유난히 좋아했던 꽃무늬 커피잔 세트, 할머니가 아끼던 작은 그릇. 그 속에 있는 그릇을 팔아도 딱히 값이 나오지 않는, 그런 촌스러운 것들이었다. 그 싸구려 커피잔들은 엄마는 꽤 오랜 시간 <엄마의 상자> 안에 보관해두곤 했다.
엄마는 가끔 그 장을 열어, 그 앞에 가만히 앉아 계셨다. 그 보잘것없는 그릇들을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했다. 어느 날은 그릇을 다 꺼내 닦기도 했다. 엄마 그 고물들은 이제 그만 버리는 게 어때, 묻는 나의 질문도 가볍게 토스하셨다. 그런 <엄마의 상자>에 판도가 바뀌는 일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겼다. 언젠가 엄마가 우연히 백두산에 다녀오시면서,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한번 가야겠다며 굳게 마음 먹었을 적이 있었다. 그때가 2006년 때였는 것 같은데, 그 여행이 엄마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것 같다.
여행을 다녀온 그제야 비로소 고가구 밖으로 나온 그 찻잔들을 처음 내 손으로 만질 수 있었다. 이렇게 생겼었구나.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에도 그릇들은 깨끗했고, 새 것 같았다. 아마 엄마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이 그릇들을 돌보고 가꾸셨던 것인지, 나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엄마는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릇들을 아껴오셨을까. 그랬던 엄마가 그 그릇들을 손수 꺼내셨다. 그리곤 내부를 슥 다시 꼼꼼히 닦으시더니, 첫 유럽여행에서 사오신 기념품을 넣으셨다. 그리곤 이렇게 말씀하셨다.
딸. 우리, 넓고 깊은 큰 꿈을 꾸자.
난 네가 넓은 세상으로 나가 자유롭게 꿈꿨으면 좋겠어.
고가구는 총 3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릇들을 다 꺼낸 그 자리는 꽤 넓었다. 그릇을 빼고 엄마가 몇 개 올려놓은 몇 개의 기념품들은, 텅 빈 공간만큼 초라해 보였다. 엄마는 여행을 다니는 내내, 이 칸을 기념품으로 가득 채우리라 마음 먹으셨던 것 같다. 이제 우리 가난한 꿈을 벗어나 조금 큰 꿈을 꾸자고, 너에게 더 큰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엄마는 네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아마 엄마는 그때 엄마의 찻잔을 꺼내며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어쨌든, 그 날 이후, 엄마는 그 공간을 우리의 꿈으로 채우셨다. 온전히 엄마 추억으로 가득 찼던 그 공간이, 이제는 우리와 함께한 시간들로 채워졌다. 엄마는 집에 손님이 오시면, 가장 먼저 기념품 컬렉션을 자랑하셨다. 여행을 다니면서 샀던 미니어처와 스노우 볼, 골무 등을 차례로 보여줬다. 엄마의 열렬한 설명은 손님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고, <엄마의 상자>는 더욱 빛이 났다.
더 큰 꿈을 꾸자는 엄마의 다짐은 현재까진 꽤 성공한 것 같다. 기념품들이 넘치고 넘쳐 고가구에 들어가지 않을 뿐 아니라, 벽장에도, 소파 옆 작은 탁자 위에도 기념품이 줄지어 서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가 <엄마의 상자>를 만져도 잔소리를 하지 않으신다. 옛날 자물쇠로 잠가두지도 않으시고. 그 첫 여행 이후,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꿀 수 없던 꿈을 꾼 기분이었고, 마음에 없었던 어떤 희망이 생긴 기분이었다. 추억은 내일로 가는 힘이라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거구나 싶었다.
첫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엄마가 그런 말을 했다. 그 낡아버린 그릇들에 우리의 세월이 담겨 있어서, 그 시간들이 아쉬워 버리지 못했다고. 그런데 우리가 자라면서 어느 순간 그런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더 큰 꿈을 꾸게 하고 싶다는. 엄마의 야망찬 생각이 엄마 자식인 우리뿐 아니라 우리 가족의 미래를 새로 그렸다.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공동의 기억이 꽤 많이 생겼다. 엄마도 달라진 것이 확실했다. 참으로 성실하고 열렬한 그 마음이 우리의 미래 텃밭을 바꾸었다. 고 가구 속 그 낡은 그릇들이 엄마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지금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것만큼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진짜 지키고 싶었던 <엄마의 상자>는 바로 자식들이었다고, 그 작은 자식들의 깊고 큰 미래였다고.
우리 집엔 <모두의 상자>가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항상 손 닿을 거리에 잠잠히 있는.
/개당 4000원 미만으로 행복을 기억하기.
1. 브런치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 기념품을 다 꺼내보기로 결심했다. 엄마가 잠깐 엄마의 엄마 집에 간 시간을 노려 작업을 시작했다. 각 층마다 나라들이 나뉘어 있고, 개수가 많아서, 들키지 않기 위해선 잘 기억해야만 했다.
2. 우선 나라별로 작은 들것에 묶어 이동을 시작했다. 엄마가 <상자>를 건드려도 좋다고 '허'하셨지만, 그럼에도 뭔가 몰래 나쁜 짓(?)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찜찜했다. 가장 먼저 이동을 시작한 나라는 러시아였다. 이 기념품들은 다 내가 사 오거나, 선물 받은 기념품들. 분명 '내 것'임 이도 불구하고, 결혼할 때 가지고 갈 수 없단다. 허, 참. 그래도 나는 다 가져가리라.
3. 러시아 미니어처 중에서 두 번째로 좋아하는 모형. ВДНХ역에 항상 서 있던 동상이다. 학교 다닐 때 매일매일 봤던 동상. 정말 딱 러시아 같은 모형. 첫 번째로 좋아하는 기념품은 붉은 광장에 있는 바실리 성당 모양의 오르골이다! 두 번째는 엄청 크고 퀄리티 좋은 마트료쉬카!(목각인형)
4. 이 작은 들 것에 온 유럽이 담겨있다. 미니어처의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싼 것은 진짜 대충 만들었다. 자세히 보면 우리 수집품에도 그런 것이 썩 많다. 당연히 가격이 올라갈수록, 퀄리티는 좋아진다. 가격은 퀄리티와 크기 등에 영향을 받는데, 나는 가장 작은 것을 사는 편이다. 보통 3유로부터 비싼 것은 진짜 몇 만 원짜리도 있다. 일 년 동안 돈을 싹싹 긁어 가는 나는 그렇게 비싼 것을 살 여유가 되지 않는다. 가진 것 중에 가장 비싼 미니어처는 한화 24000원짜리 엄청 큰 덴마크 성이고(진짜 손 벌벌 떨면서 샀다.), 가장 싼 것은 1500짜리 러시아 작은 목각인형이다.
5. 베란다에 하얀 천을 깔고, 나라별로 열심히 분류했다. 1/3도 꺼내지 않았는데, 벌써 땀이 뻘뻘 났다. 아이고 더워라, 냉장고에서 초코우유 하나를 냉큼 꺼내다 시원하게 마셨다.
6.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독일, 체코, 인도,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다. 각 나라에서 구입한 미니어처들을 모아보았다. 이렇게 모아 두고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핸드폰으로 보시는 분들은, 클릭하시면 사진이 크게 나온답니다!)
7. 영국의 런던(London)! 런던의 랜드마크인 빅벤과 다리가 보인다. 사진을 이렇게 두고 찍으니 정말 영국을 찍은 것 같았다. 꽤 근사하군. 런던 뒤로는 네덜란드와 스페인이 보인다. 스페인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 고모에게 선물 받은 모형이다. 사실 모형 중에 선물 받은 것도 꽤 많다. 일본, 스페인, 중국 등. 세상은 넓고 기념품은 많다!
8. 이 파트는 미국! 난 아직 미국엔 가보진 못했다. 미국에 잠깐 공부하러 다녀온 아버지(?)가 사오신 것들이다. 왼쪽 사진 아래쪽에 위치한 오르골은 나에게 선물하셔 놓곤, 다시 압수당했다. 허, 참. 억울해서 언젠간 미국을 가봐야겠다.
9. 여기에 모아둔 기념품들은 대체 어디인지 몰라 모아두었다. 지금 와서 보니, 인스브루크와 짤스부르그가 보이네......, 하하. 고가구에 있던 기념품의 1칸하고 반을 꺼냈다. 아직도 가구 안에는 맨 아래칸의 이집트 쪽과 두 번째 칸 캐나다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저거까지 다 꺼낼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관뒀다. 에휴.
10. 다른 작은 벽장에는 수십 개의 골무가 있다. 개수를 안 세어봐서 모르겠지만, 100개는 안될 것 같다. 같은 나라라도 골무는 도시마다 다르기 때문에, 유난히 많다.
11. 골무 1개의 평균적인 가격은 최하 1유로부터 5유로 정도의 가격이다. 단, 스위스는 제외! 나라마다 그리고 도시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크기가 작아 휴대가 용이하고 저렴하며 예쁘다는 장점이 있다. 외국에선 골무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도시마다 안에 그려진 그림, 모양 등 다 달라 여행객들은 보통 몇 개씩 사가지고 한다. 특히 외국 여행객들은 골무를 많이 사가는 것을 쉽게 접했다.
12. 지금까지 수집한 골무를 보면, 골무는 대략 4가지 정도로 나눠볼 수 있겠다. 맨 위 첫 줄은, 정말 특이하고 예쁘게 생긴 골무! 이렇게 독특한 골무를 찾기는 사실 쉽지 않다. 기념품이 다 거기서 거기듯, 골무도 디자인이 어느 순간 비슷하게 돌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두 번째 줄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하얀 배경에 금색 테두리가 있는 골무다. 안의 그림은 다 다르다. 세 번째 줄은 쇠 골무다. 회색빛 배경 위에 금색으로 그림이 그려져있곤 하다. 러시아에서 산 골무는 다 저 모양이다. 맨 아래 줄의 골무는 입체적이다. 손으로 도돌도돌 만져진다.
13. 왼쪽은 크로아티아의 DUBROVNIK, 오른쪽은 헝가리다.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 모형은 퀄리티가 정말 좋다. 크기도 엄청 정말 크고. 자세히 보면 길거리가 생각날 정도로 아주 세밀하게 만들어졌다. 보통 이 정도 퀄리티와 가격이면 다른 곳에선 진짜 몇만 원 할 텐데, 정말 완전 싸게 샀다.
14. 이 수많은 기념품들을 보고 있으면서, 가장 많이 마음속으로 말한 말은 '고마워'였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느끼라'는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아직도 작은 어린애였을지도 몰라.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함께해요.
그땐, 제가 모시고 갈게요.
글│ 청민 淸旻
사진│ 청민 淸旻
기념품은 단순히 그곳에 다녀왔음을 증명하는 서류가 아닌 것 같아요.
함께 걸었던 거리를 기억하고, 함께 웃은 이야기를 추억하고,
함께 먹었던 음식을 떠올리고, 함께 울던 그 날밤에 미소 짓고.
그리고 지금 곁에 있는 이 기념품을 함께 구경하고 함께 골랐죠.
여행 경비 중 한 끼만 가볍게 먹고 돈을 아끼면, 이렇게 멋진 작은 마을을 만들 수 있답니다.
다음 여행 때는, 당신이 행복했던 그 공간을 담아오시는 것은 어떠한가요?
오늘도,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