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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Aug 18. 2015

유럽에서 캠핑을 한다는 것은

우리만의 소중한 공간, 따듯한 공간.


07. 유럽에서 캠핑을 한다는 것은



"여행 중에 뭐가 가장 좋았어?

친구들은 종종 이렇게 묻는다. 자신이 아는 지식을 총 출동시켜 특별 지명까지 말해가며 거긴 어땠냐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나에게 막 쏘아대며, 자신의 로망을 충족시킬 말들을 내가 해주기를 은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네가 말한 그곳도 참 좋았는데, 나는 유럽에서 캠핑이 가장 좋았어- 이렇게 툭 대답을 하니, 에게! 고작 그거야, 란 표정으로 친구들의 눈빛은 금세 변했다. 그건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건데, 굳이 비싼 비행기 값을 치르고 캠핑이나 하고 오냐며 친구들은 나를 쫑알쫑알 나무랐다.


네덜란드, 암스텔담의 캠핑장.

스물다섯이 되기까지 나는 유럽을 총 네 번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내 첫 유럽여행은  열여섯 때였고, 내 캠핑기도  그때 시작되었다. 여행의 '여'자도 모르던 엄마가, 우연히 백두산에 한번 다녀오시곤 어린 우리에게도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엄마의 결심 이후, 우리 집은 좀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다니던 수학 학원도 그만뒀고, 식탁 위의 반찬의 개수도 줄어들었다. 마트에 갈 때마다 꼭 하나 쯤은 내가 원하는 것을 사주셨는데, 그 이후론 얄짤없었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옷을 산 기억도 없다. 몇 년 동안 엄마는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으셨다. 조금은 이모에게 돈을 빌려, 결국 우리 가족은 그 어린 시절에 유럽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 집은 넉넉지 않았다. 그런 우리 집이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면, 말만 그렇지 돈이 많을 거라 꼭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정은 달랐다. 바로 여기서 캠핑 이야기가 시작된다. 여행을 가려면 숙박할 곳이 필요한데, 우리 집 사정으로는 호텔이나 모텔방에 잘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생각하게 된 것이 바로 캠핑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캠핑이란 꽤 낯선 단어였다. 우리는 매일 공공 도서관에서 책과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았다. 중요한 책은 몇 권 사기도 했다. 엄마는 틈이 날 때마다 책을 읽으셨고, 자동차 여행을 다녀온 사이트를 매일같이 방문하셨다.

그렇게 장만한 우리의 첫 텐트, 초록이. (2006~2014)

한국에서 짐도 엄청나게 가져갔다. 우선 텐트를 구입했다. 텐트 세트는 물론, 텐트 바닥에 까는 큰 스펀지와 개수에 맞게 침낭과 에어배게도 구입했다. 또, 식비가 만만치 않을 것을 예상해 각종 인스턴트 제품들, 일회용 국들, 엄청난 개수의 햇반, 라면, 간장, 참기름, 도마, 칼, 등 지금 생각하면 그걸 어떻게 다 가져갔나 싶을 정도로 다 챙겨갔다. 그냥 집의 부엌을 축소시켜 가져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부피를 줄이기 위해 옷은 버리고 갈 것만 챙겨갔다. 그래서 지금 사진을 보면 너무나 촌스럽다 못해 초라해 보인다. 우리 개인 짐은 하나도 가져갈 수 없었다. 총 짐 정리를 책임지고 있던 엄마의 검열을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첫 유럽여행, 첫 자동차 여행, 첫 캠핑. 우리 가족은 엄청 많은 실수와 경험을 했다. 아빠는 5000km를 운전했고, 엄마는 매일 삼시 세 끼 밥을 차렸고 나와 동생은 차만 타면 빨래를 툭툭 치며 말려야 했다. 처음 공항에 도착해 차를 렌트했을 때가 생각난다. 아빠는 불어와 영어로 동시에 말하는 직원의 말을 못 알아들으셨다. 나와 동생이 그 어린 나이에 대충 알아들어 계약을 완료했는데, 아직도 아빠는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신다. 무튼 아빠가 계약을 마무리지을 때, 동생과 나는 밖에서 쇼핑카트에 박힌 1유로를 빼내기 위해서 별 짓을 다하고 있었다. 결국 빼지는 못했지만.

우리 가족의 첫 차, 푸조 307 sw.

우리 첫 유럽여행에서 첫 차는 푸조 307, 아주 푸른 차였다. 장거리 비행에 지쳐 동생과 나는 차에 타자마자 뻗어버렸다. 아빠는 외국 차가 신기하다면서 이것저것 만져보셨는데, 갑자기 천장이 드르륵 열리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뚜껑은 열리지 않았는데, 유리 마감으로 되어있어 하늘이 보였다. 마침 비도 후두둑 떨어졌다. 나의 첫 유럽은 파란 푸조 안에서 비스듬히 누워 비를 맞는, 비몽사몽해 눈이 잘 떠지지도 않아 꿈만 같은, 그런 곳이었다.


우리 가족은 항상 사이가 좋았다. 부모님은 단 한번도 우리 앞에서 소리 지르고 싸우신 적이 없다. 친구들은 오히려 우리 집을 보며 '비정상 가족'이라 말했다. 어렸을 땐 시간이 날 때마다 가까운 곳에 여행을 갔고, 모든 것을 공유했다. 하지만 동생과 내가 커가면  커갈수록 우리가 집안에서 함께할 시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학기만 되면 집을 떠나 기숙사로 향했고, 스물이 넘은 내 동생은 늘 늦은 귀가를 했다. 방학 때 가족이 집에 다 돌아와도 우리는 이상하게 바빴다. 그 아쉬운 시간들을 채울 수 있는 시간은 바로 가족 여행이었고, 캠핑이었다. 그래서 동생과 내게 캠핑은 더 특별했다. 텐트 안에서의 시간은 온전히 가족을 위한 시간이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살 부딪치며 얘기했고, 잘 드러나지 않았던 서로의 특징을 발견하곤 했다. 예를 들어 동생은 텐트 안에서 방귀를 끼는 실례를 하면 공기를 더럽혔으니 미안하다며 자신이 다 들이마시겠다고 액션을 취하곤 했다. 그 모습에 우리는 한참을 목놓아 웃곤 했다.



노르웨이, 오슬로. 캠핑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가장 부러웠던 풍경이다.

캠핑장에서 우리는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누구도 한국에 두고 온 개인적인 무거움을 기억하지 못했다. 매일 놀다 캠핑장에 들어와 밥을 먹는 시간은 밤 9시 즈음. 남들에게 폐를 끼칠까 봐 텐트 안에 연결된 생명줄 같은 전기를 붙들고 아주 조용히 밥을 먹었다. 어두컴컴한 텐트 안에서 한줄기 핸드폰 조명을 의지해서 먹는 밥은 꿀맛이었다. 엄마와 나는 매일 이 시간에 먹으니 우리 가족 뱃살이 빠질 리가 없다며 웃곤 했다. 낙엽만 떨어져도 까르르 웃는 여고생들처럼 우리는 그 좁은 텐트 안에서 별 스토리를 다 만들어냈다.


캠핑은 우리에게 귀한 시간이었다. 가끔은 여행지보단 텐트 안에서 짐 정리하고, 밥하고, 설거지하던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곤 한다. 가끔 친구들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비싼 비행기 값을 치르고 캠핑하고 오냐고 놀리긴 하지만 한국을 떠나, 우리를 아는 시선으로부터 떠나 사랑하는 이들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주는 가치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친구들의 애교섞인 놀림이 아무렇지도않다.  캠핑은 그만큼 우리 가족에게 특별한 사건이고, 텐트는 우리에게 소중한 공간이다. 가정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 자녀들 미래에 대한 걱정, 앞으로 먹고 살 걱정, 군대난 걱정 등을 잠시 내려놓고, 눈 앞에 보이는 즐거움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공간 말이다. 그냥 서로 사랑만 하면 되고, 서로 아껴주기만 하면 되던 그런 공간. 그게 우리에겐 소중한 숨통이었고 캠핑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런 공간이 있다. 이상하게 마음이 픽하고 풀리고, 그 누구와 이야기하면서 계산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공간. 치열한 싸움을 하던 두뇌를 무장 해제시키고, 마음이 잘 익은 보쌈처럼 푹푹 삶기는 그런 공간. 그게 우리에겐 유럽으로 떠나는 여행이었고, 그 좁디좁은 텐트 안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일 년 동안 새 옷을 못 사도, 엄마가 가끔 특별 용돈을 주시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 모두 이 공간에서 나눈 웃음소리를 기억하니까, 언젠가 다시 돌아올 우리만의 공간, 우리만의 여행을 위해, 우리에겐 그쯤은 뭐 별 것 아니다. 달콤한 휴식을 기억하며 다시 삶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그 최선의 시간도 우리 혼자가 아님을 아는 것, 그거면 되기 때문이다.








잔디 위에 지은 작은 우리의 집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에 대한 20가지 시선



(가장 왼쪽) 집에서 가지고 간 전기줄, (가운데와 오른쪽) 캠핑장에서 지불 후 사용할 수 있는 코드.

1. 우리처럼 가난한 여행객에게(질 <양)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전기'. 리셉션에서 계산을 할 땐 세밀한 것 까지 체크를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 수, 텐트 혹은 히테(북유럽은 히테hytte라고 불리고, 서유럽은 방갈로 등으로 불린다.), 텐트의 사이즈와 개수(크기별로 가격이 다르다. 보통 소, 중, 대로 나뉜다.), 차의 여부, 전기, 샤워코인, 인터넷 사용 여부, 빨래 코인 등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전기는 캠핑장 중간중간에 세워져 있고, 자신의 전기 코드에 멀티탭을 꽂아 연결해 사용하면 된다.










자리잡은 캠핑카와 텐트. 텐트 앞에선 한가족이 햇살을 즐기고 있다.


2. 돈을 지불했다면, 텐트 칠 장소를 잡아야 한다. 좋은 곳에 텐트를 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풍성한 잔디밭을 찾는 것이다. 그리곤 화장실 및 편의시설이 가까우면서도 조용한 곳. 그러면서도 너무 동떨어지지 않는 곳이 최적의 장소다. 아, 옆 텐트와의 거리는 꼭! 충분히! 띄어야 한다. 좋은 전망을 원한다면 물가에 텐트를 치면 좋다. 하지만 엄청난 모기를 견뎌야 한다.












3. 텐트를 치고 나서는 번호를 달아야 한다. 자리를 정하는 것은 캠핑장마다 다르다. 미리 리셉션에서 선택하기도 하고, 캠핑구역에서 자유롭게 치는 곳이 있다.   자리를 정하면 이렇게 자리 번호를 나눠주곤 한다. 차는 텐트 옆에 세워둔다. 처음, 첫 캠핑장에 갔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위해 주인아저씨가 세세하고 세밀하게 다 알려주셨다. 차는 여기에 대고, 텐트는 여기에 세우는 게 좋을 것 같아!라고.













캠핑을 하면서 만들어먹었던 음식들. 초라하게(?) 보이는 사진이 많아서 그나마 괜찮은 것들로 추렸다.

5. 캠핑을 하면서 수많은 음식(?)을 해먹었다. 그런데 너무 초라해서 딱히 올리기 민망한 사진들이 많았다. 처음엔 탁자를 구입하지 않아서 텐트 안에서 신문지를 깔고 밥을 먹었다. 여행 횟수에 따라 우리의 식탁은 점점 나아졌다. 처음엔 신문지를 깔고 대충 끼니를 때웠다면, 다음엔 싼 테이블을 구입했고, 그 다음엔 가끔 멋진 탁자를 빌려 식탁을 차렸다. 캠핑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고 간단하면서도 맛있어야 하고, 설거지가 적게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덴마크의 한 캠핑장. 주방이 매우 깔끔했다.

6. 뒷마무리는 무조건 깔끔하게. 다른 사람들은 설거지를 하고 튀긴 물까지 자신들의 행주로 다 닦고 간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 샤워실도 한국과 달라 안쪽에 튀긴 물을 다 정리하고 나와야 한다.












7. 캠핑을 할 땐, 매일 엄청난 짐을 꺼냈다 정리해 다시 트렁크에 넣어야 한다. 짐이 트렁크에 다 들어가지 않을 때엔 뒷좌석 가운데에 두고 가야 하는데, 짐에 치이며 몇 시간 타는 차는 정말 지옥이다.










8. 한국에서 텐트 하면 값이 조금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감히 외국에 나가 텐트를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네 번째 여행 때는 아예 텐트를 가지고 가지 않고, 캠핑 전용 대형마트에서 구입했다. 4인용 기준으로 한화 약 10만 원 정도. 아마도 이 텐트를 마르고 닳도록 사용할 것 같다.












9. 여행 중, 캠핑장에선 유난히 노부부를 많이 만났다. 탁자와 의자 등을 손수 챙겨 밖에 내어두고 앉아서, 하루 종일 햇빛을 쬐며 신문을 읽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들의 시간들을 즐기는 그들이 부럽다며, 엄마는 언젠가 그렇게 살고 싶다고 하셨다.












10. 덴마크의 한 조용한 캠핑장. 공용 부엌에서 한 커플이 눈인사를 건네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설거지를 사이좋게 하고는 '좋은  여행되렴!' 동생과 내게 인사하셨다.












11. 여행을 하며 가장 놀랐던 것이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많은 가정이 캠핑카 한대씩은 가지고 있다는 점. 둘째, 여행객들의 캠핑용품을 보면 집에 있는 주방을 옮겨둔 것 같이 풍부하다는 점, 셋째, 한국과는 다르게 노부부만 오랜 여행을 다니는 것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는 점.












너무 낡아 새로 장만한 세번째 텐트. 정말 싼 가격에 샀다.

12. 누구에게나 돌아가고 싶은 마음의 공간이 있다. 나에게 잔디 위에 지어진 작은 텐트가 바로 그런 공간이다. 소박하게 웃으며 걱정이 없는 곳. 걱정이 있다면 당장 우리가 무엇을 해야 더 행복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하는 곳. 많은 이들이 산과 바다로 사랑하는 이들과 캠핑을 떠나는 이유가 바로 나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캠핑장에서 만난 엄청난 비

13. 당신에게 그런 공간은, 어디인가요?











글과 사진 청민.

주 카메라는 니콘 디 오천삼백.



가끔 캠핑이 너무 가고 싶은 날이면, 집 어지른다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거실에서 텐트를 칩니다. 그리곤 몇 날 며칠은 그 안에서 가족과 함께 잠들곤 합니다. 저희 가족에게 텐트 안은 참 소중한 시간이 담긴 공간입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공간은 어디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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