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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Jul 29. 2015

꿈을 걷는 소녀

돌로미티에서 낮잠을 자다.


06. 꿈을 걷는 소녀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나에게 이탈리아 돌로미티가 그랬다.


뜨거운 감자의 <고백>이란 곡에 이런 가사가 있다.

"구름 위를 걷는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란 걸 알게 됐어"


돌로미티는 이 문장 외에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어쨌든 꿈을 걸었다. 꿈이라기엔 내 몸을 감싸는 햇살이 너무나 강렬했지만, 그렇다고 현실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현실감이 없었다. 이곳은 '완벽한 곳' 같았다.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완벽한 곳. 돌로미티를 걷는 내내 그랬다. 풍경에 서 있는 내가 가짜 같아, 금방이라도 저 햇살에 부서질 것 같았다. 몇 번이나 걷고 뛰며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 후에야 나도 이 풍경의 한 부분이 됨을 깨달았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그림이 하나 있다면, 바로 오스트리아 빈, 벨베데레 궁전에 걸린 클림트의 <키스>다. 책과 엽서를 통해 너무 많이 봤던 그 뻔하디 뻔한 그 그림말이다. 실제로 <키스>를 보았을 때 나는 몸을 떨었다. 그 황홀함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방은 온통 까아만 벽지로 둘러져 있었고, 조명은 잔잔하게 흘렀다. 그리고 그 가운데 우뚝 클림트의 <키스>가 걸려있었다. 은은한 조명은 그림을 타고 흘러 나에게 다가왔고, 그 순간 그 화려한 금빛에 나는 서서히 물들었다.


그 황홀함을 나는 돌로미티에서 다시금 마주했다. 어쩌면 <키스>를 처음 봤던 그 날보다 더 비현실적인 떨림이 나를 맞았다. 하늘은 따스히 이 땅을 비추었고 바람은 모든 생명을 간지럽혔다. 풀과 꽃들은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고, 우직히 솓은 돌산을 그 모든 멜로디를 지휘했다. <키스>는 단순히 내가 바라만 봐야 했다면, <돌로미티>는 나 또한 참여할 수 있었던 살아 숨쉬는 작품이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 까, 노곤해졌다. 적당한 언덕에 누운 사람들처럼 나도 그냥 벌러덩 누웠다. 핸드폰을 열어 가수 김동률님의 노래를 찬찬히 틀어놓고 눈을 감았고, 눈을 떴다.


세상은 아름다웠다. 지금껏 내가 꿈꾼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의 세상은 그냥 고인물이었다. 우물이었다. 어른인 줄 알았는데, 아직도 어른이 아니었다. 내 생각이 옳다며 핏대를 세웠지만, 그 생각은 너무나 편협하고 작은 것이었다.


어렸을 적 세상은 아름다운 줄 알았다. 지금 이 땅처럼 세상은 따듯한 바람이 부는 줄 알았다. 그 환상이 깨지던 그 날 이후, 세상은 검은색이라 생각했다. 특히나 빌딩 가득한 한국의 현실에서, 이십 대가 살아가야 할 한국의 미래에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렸을 적 꿈꾼 세상의 아름다움은  꿈속에만 있는 거라고, 그건 동화 속에만 흘러 나오는 '꿈'이라고, 그렇게 말이다.


그래서 조금 억울했다. 한편으론 그랬다. 한국 땅에 살면서 이런 풍경은 감히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에. 짧은 나의 상상력에 반성했고, 세상엔 아름다움이 없다며 비관한 지난 마음가짐에 반성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돌로미티는 나를 살포시 안아주었다. 이 거대한 자연이 포근히 나를 위로하는 것 같았다. 땅에 머리를 대고 엄마 뱃속에 있던 모습으로 손과 다리를 모아 누웠다. 엄마 품에 안기듯 땅의 맥박에 집중했다. 그러자 땅은 작은 풀 한 포기로, 바위 사이에 핀 노란 들꽃들로, 머리칼을 간지럽히는 풍성한 바람으로 소녀를 안아 주었다.




'괜찮다. 그냥 뭐든 다 괜찮다.'


땅의 맥박은 따듯했다. 풍성했고 영롱했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마음의 가나안 땅을 찾은 것 같았다. 꿈이 아니었다. 손가락을 코 가까이에 대어, 따듯한 숨결을 몇 번이 곤 확인했다. 나는 살아있었다. 들숨과 날숨이 나를 채웠다. 그게, 왜, 그 순간에, 중요했는, 참.


살아있다는 것이 축복임을, 마음의 가나안 땅을 신뢰함이 또 다른 미래의 시작임을, 땅의 맥박은 모든 것을 안을 힘이 있다는 것을 나는 <돌로미티>를 통해 배웠다.


나는 꿈을 걸었다.












돌로미티가 부르는 위로의 노래!

/ 자연이 주는 사랑에 대한 11가지 시선

1. 저 멀리 돌로미티가 보인다. 어쩜 신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살짝은 귀찮아서(?) 돌덩이를 툭 던진 것이 아닐까 싶다.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2. 충격이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내가 사는 이 지구에는 회색빛 건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곳을 몰랐다는 사실에 조금 억울해졌다.









3. 강렬한 햇살. 끝없이 펼쳐지는 초록 빛깔. 그 어디 하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4. 꽤 성능 좋은 카메라로 셔터를 이리저리 눌러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사진엔 그 진가가 담기지 않았다.










5. 수 많은 들꽃들은 꼭 별 같았다. 밤에 피는 별들을 따서 작은 갈색 바구니에 넣어 두었다가, 밤이 지나고 햇살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면 누군가 그 바구니에서 별을 꺼내, 땅에 뿌린 것 같았다. 또 다른 생명의 씨앗 같았다.









6. 잊고 있던 그리고 잊으려 애쓴 감정들이 흘러 나온다.

숨기지 못할 만큼, 숨길 수 없을 만큼. 그리고 원할 수 없던 만큼, 원하지도 않은 만큼.










7. 덩치를 부풀리지 않아도, 조금 더 진한 색을 가지지 않아도. 너는 그냥 있는 그대로 아름다웠다. 영롱한 초록빛이 아롱 아롱거린다.









8. 수 많은 사람들의 흔적.

우리는 우리의 무엇을 이끌고 이곳까지 왔을까.








9. 돌로미티에는 유난히 오토바이족이 많았다. 두꺼운 가죽 재킷을 입고 강렬한 선글라스를 쓰고 그들은 바람을 갈랐다. 그들은 꼭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다 같은 도로를 달렸지만, 그들의 마음은 다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10. 돌로미티 곳곳에 죽은 이를 추모하는 작은 비석들이 놓여있다. 자연 앞에서 우리의 존재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묘한 바람이 불었다.









11. 나는 꿈을 걸었다.










글은 청민

사진은 Peter와 청민

카메라는 니콘 디 오천 삼백과 디 팔백



사진을 다시 보니 다시금 어딘가 떠나고  싶어집니다.

찾아주신 모든 분들, 좋은 하루가 되길,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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