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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Jun 22. 2015

세 살 차이, 남매의 여행

남매의 애증은 복잡하다



세 살 차이, 남매의 여행

어쨌튼, 난 네가 너무 싫다.

엄마는 어렸을 적부터 나와 내 동생을 <톰과 제리>라며 놀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톰'이라고 부르시는 엄마의 의도는 딱히 긍정적이지 않으신 것 같았다. '톰'은 항상 '제리'를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항상 '제리'에게 호되게 당하기 때문이다. 엄마 보시기엔 나는 그 바보 같은 '톰'이었고, 동생은 항상 '제리'였다.


세 살 차이인 우리는 20년을 넘게 매일을 마지막인냥 싸웠다. 다른 남매들과 우리 남매가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목소리 볼륨 스케일'이었다. 우리는 목소리가 유난히 다른 사람보다 컸다. 아버지를 닮은 탓인데, 덕분에 우리는 조금만 다퉈도 무슨 멱살 잡은 일이 생긴마냥 사람들은 불안하게 쳐다보며 지나가곤 했다.


지나 생각해보면 우리 싸움의 역사가 꽤 흥미진진하다. 20년 전통(?)이란 상호를 붙여도 된 만큼 역사도 깊고, 그 변천사가 화려하다. 온갖 사랑을  독차지하며, 세상은 모두 내 발 아래인냥 살았던 내 세 살 인생에 동생은 뜬금없이 찾아왔다. 동생을 낳으려 들어가는 엄마를 붙잡고 나는 세상이 무너질 듯 울었다고 한다. 결국 엄마는 마지막까지 나를 쫓아내지 못하셨다고.


어렸을 적, 동생이 작은 눈병에 걸렸을 때 일이다. 엄마는 동생 수건을 절대 쓰지 말라고 하셨다. 동생만 예뻐하고 나는 뒷전인 엄마가 너무너무 미워서, 발을 씻고는 동생 수건에 발을 벅벅 닦았었다. 보너스로 콧물도 조금 뭍여두고. 그땐 그게 나쁜 마음인지도 몰랐다. 여섯 살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동생을 괴롭힌 에피소드를 풀자면 밤을 새도 모자란다며 엄마는 말씀하셨다. 엄마가 잠깐 집을 비우면 나는 동생을 방안에 딱 불러 앉혀두곤, 튀김 젓가락을 들고 동생을 혼냈다고 한다. 왜 그렇게 누나에게 까부냐며. 이 사건은 할머니가 제보하셨는데, 그때의 내 표정이 너무나 단호해 할머니는 말리지 못하셨다고 한다.



스물이 넘으며 우리는 각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새로운 감정을 배우고, 더 큰 세상에 눈을 떴으며, 화려한 사람들을 만났다. 나를 매일 약 올리던 동생은 누군가의 의젓한 선배가 되었고, 누군가의 남자가 되었으며 또 누군가의 진실된 친구가 되었다. 매일 작은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나에게 한대 맞아 울던 동생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성장해 있었다. 어쩌다 보니 우린 남매를 넘어 인생 여행의 친구가 되었다. 매일 나와 피 터지게 싸우던 너는 바라나시에서 마음이 어지러워 두려워하던 내 손을 잡아주고, 노트북이 든 무거운 여행가방을 대신 들어주며, 쓸데없는 잔 심부름도 묵묵히 해주었다.  어느새 넌 나의 듬직한 여행 메이트가 되었다.


우리의 싸움의 역사는 기초가 탄탄했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도 튼튼하다 말할 수 있는 것 같다. 아빠는 어렸을 적 우리에게 종종 '남매는 미워도 그게 진짜 미움이 아니야. 그것도 다 사랑이야.'말씀하셨다. 그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는 우리는, 어른이 되는 길목에 서 있음을 느낀다.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한 집에 같이 부대끼고 살지는 모르겠지만, 서로가 이 집을 떠나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너에게는 누나가 있고, 나에게는 네가 있음을 기억했음 좋겠다. 어쨌튼, 난 네가 너무 고맙다.






Tom & Jerry!

/남매에 관한 8가지 시선

1. 동생과 나는 3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남매답게 매일 한 번씩은 꼭 투닥거린다. 동생과 함께한 23년은 애정 어린 싸움 반, 진짜(진! 심!) 짜증남 반으로 채워졌다.






2. 톰과 제리. 엄마는 우리를 농담 삼아 종종 그렇게 부르곤 하셨다. 제리(동생)의 꼬임에 항상 쉽게 열 받는 톰(나)이라며. 엄마가 그 말씀을 하시고 나면 동생이 꼭 하는 말이 있었는데, 그게 나를 더 열 받게 했다. '누나, 누나는 나랑 그 오랜 세월을 살았으면서, 왜 항상 똑같은 패턴으로 나한테 넘어와?' 그럼 나는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외친다. '아, 저걸 그냥 콱.'





3. 우리는 서로에게 딱히 관심이 없으면서도, 서로를 너무나 빠삭하게 잘 알고 있다. 우리는 가끔 서로를 부르는 일상의 말을 씹기도(?)하면서, 이성문제가 있을 때엔 자기가 먼저 상대를 찾는다. 동생은 평소에 내가 불러도 종종 무시하면서 문제만 생기면 '누나앙~하면서 말을 거는데, 나도 복수차 씹고(?) 싶지만 성격상 궁금해서 또 대답을 해준다. 나는 영원한 '톰'인가 보다.






4. 어렸을 때, 우리는 이상한 습관이 하나 있었다. 말싸움이 붙었는데 서로 지지 않으려고 하면, 이기는 방법은 딱 하나였다. 발가락 손가락을 구부려서 이상한 표정을 더 오래 짓는 사람이 승자인, 이상하면서도 별나고 괴상한 습!






5. 생각해보면 아직도 우리는 초등학생 6학년, 3학년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궁금한 게 너무나도 많고, 세상은 아직 우리에게 너무나도 멀며, 심지어 크다.







6.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나를 기다리던 동생을 우리 반 남자애들이 괴롭히고 있었다. 그 때 학교는 공사 중이었는데, 내가 바닥에 꽂힌 그 큰 삽을 들고 '야아 아!!!!!!!!!!!' 소리 지르며 뛰어간 적이 있다. 남자애들은 도망갔고, 겁먹은 동생은 신기하듯이 나를 보면서 살며시 웃었다.







7. 사실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란 씨앗을 서로의 마음에 하나씩 심었다. 때로는 너무 짜증 나고 때로는 미워서. 그래도 우리는 같은 피를 나눈 남매였다. 서로의 마음에 상처 씨앗을 심은 대신에, 그 씨앗 옆에는 백개의 사랑을 심었다.






8. 동생은 가끔 누나를 존경하고 정말 사랑한다고 말한다. 나는 그 말에 감동을 받아 용돈을 몇 번 준 적이 있다. 그런데 후회한 사건이 있다. 동생 핸드폰을 우연히 열어 사진첩을 봤는데, 동생 핸드폰 속의 나는 1) 노숙을 하고 있거나 2) 자기가 찍으려던 풍경에 내가 끼어들었거나 3) 사진을 찍어달라는 내 부탁이 귀찮아서 나를 잘랐거나 4) 흔들렸거나 하고 있었다. 가수 이효리님의 블로그에서 읽은 글이 생각이 났다.






9. 이제 와서 누나인척 생색내고 줬던 돈을 돌려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얌마. 누나는 너를 사랑하고, 이 순간 너와 함께인 것이 참 감사하다. 잘 살자, 제리야.








글은 청민

사진은 Peter와 청민



개인적인 이야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 제리 같은 동생과 다시 한 번, 여행을 떠납니다.

지난 1년 동안 옷을 단 한벌도 사지 않은 돈으로 말입니다!

좋은 사진 많이 찍어오겠습니다:) 오늘도, 따듯하고 행복한, 좋은 날 보내세요!


ps. 아, 동생아. 혹시 글을 볼지 몰라 덧붙인다. 누나는 네가 내일 여행 경유지에서 무거운 내 가방(노트북이 든)을 들어준다 그래서, 너랑 사이 좋은 글 쓰는 거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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