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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Jun 13. 2015

시간아 천천히

시간아 잠시 동안만 멈춰줄래, 너는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시간아 천천히


제목은 K팝스타 3의 TOP 3 진출자 <이진아>양의 <시간아 천천히>를 가지고 왔다. 개인적으로 요즘 매일 따라 부를 만큼 좋아하는 노래라서 :-)



나는 무엇이든 잘 잊어 버리는 '털파리 성격'이다.(왜 털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엄마가 나를 종종 털파리인지 털팔이인가로 부르셨다. 종종 실수를 잘하는 성격을 일컫는 말 같은데, 표준어 같지는 않고.. 음 사투리 같다.) 초등학교 6학년 땐, 졸업사진 찍는 것을 잊어 버려 잠옷 비슷한 초록색 추리닝을 입고 사진을 찍었었고, 중학교 2학년 땐, 학교가 쉬는 날인 줄 알고 10시까지 늦잠을 자다가(물론 엄마에게도 쉬는 날이라고 큰 소리를 떵떵 쳤던 상황이었다.) 학교에서 온 전화를 받고 엄마와 담임 선생님께 등짝 스매싱을 맞기도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땐, 수행평가 제출 날을 잊어 하루 늦게 제출해 황금 같은 점수를 깎이기도 했다. 심지어 대학교 1학년 땐 전공 시험장을 들어가다가 깊은 계단이 있었다는 것을 잊어 버려, 발가락이 부러져 과의 유명인사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나는 태어날 때부터 허당기와 까먹기 기능을 탑재해 태어났다. 스물이 되던 순간부터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메모지와 펜을 항상 들고 다녔다. 그 곳이 화장실이던, 여행이던 상관없이 말이다. 그 때부터 나의 메모 습관을 24시간 풀가동했다. 스스로의 단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주 작은 일도 꼬박꼬박 적고, 잊지 않으려고 항상 나의 본능과 싸우며 매일을 살았다. 완벽하게 태생적(?) 단점을 고치진 못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장점으로 승화시켰다고는 확신한다.


어쨌든, 이 사진을 찍을 때 나는 북유럽, 정확히는 노르웨이를 여행 중이었다. 지금껏 다녔던 나라 중에서 노르웨이는 주관적으로 '가장 강렬한 나라' 랭킹 3안에 드는 곳이 되었다. 그 정도로 나에게 강렬했고, 따듯했고, 황홀했으며 이런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내내 부러웠다. 꼬불꼬불 산을 타고 올라가면 어디서 볼 수 없던 풍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하는 3주 동안 메모장을 두 번이나 갈아치웠다. 때로는 그 자리에 앉아서 풍경을 스케치하기도 했고(비록 비루한 솜씨지만), 생각나는 모든 형용사를 나열해보기도 했으며, 그리운 사람들의 이름들을 써보기도 했다. 내가 먹은 음식의 종류와 방문했던 지명의 주소 등을 쓰기도 했다.


저 사진을 찍을 때에도 나는 역시나 감출 수 없는 감정에 빠져있었다. 트롤스티겐(Trollstigen)이란 이름 때문인가(요정의 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내리 쬐는 햇살 하나하나가 작은 요정 같았고, 반짝이는 조약돌이 꼭 귀여운 아기 트롤 같았다.(트롤은 노르웨이의 마스코트다.) 주변에 사람은 많았지만 나는 나만의 투명박스에 들어가 있었다. 그 투병 박스에 들어가니 주변 소리는 영화 효과처럼 천천히 줄어들었고, 나의 마음의 소리는 점점 크레센도 되었다.


그냥 네가 보고 싶다.


햇살은 따스했고 그 순간의 나는 행복했으며 뒤로 흐르는 폭포 소리와 사람들의 이야기 소리가 한데 어울려 하나의 멜로디가 되어 내 주변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나는 그 애가 그리웠다. 그렇다고 그리움이 구구절절하게 뜨겁거나, 영화의 비극적 주인 공들처럼 애절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담백하고 고소한 그리고 행복한 그리움이었다. 그냥 감정이 잔잔한 파도처럼 나를 덮쳤고, 나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연스레 펜을 들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네 생각이 났고, 지금 쬐는 이 따스한 햇볕이 너처럼 느껴졌어. 이런 곳에서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축복인 것 같아. 추억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추억이 참 아름다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작은 축제 같은 마음일 거야.


그 따듯한 감정들을 저 작은 종이에 나열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생각은 쏟아져 나오고, 글을 받아 쓰는 내 손은 느리고! 그래서 속으로 나지막이 시간에게 부탁했다. '시간아 천천히 흘러라.' 하고.


그 감정을 쏟아내고 있는 중이다, 저 사진 속의 나는. 누구보다 진지하게, 그러면서도 행복하게! 








This is Norway!

/노르웨이가 선물한 따듯함에 대한 10가지의 시선


1. 흔한 노르웨이의 폭포. jpg

처음에 폭포를 보고 '와! 대박! 쩔어!'라며 각종 신세대어(?)를 구사했지만, 여행 3주차엔 폭포를 보라는 동생의 말에도 고개를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2. 이 곳은 요정의 길이란 이름을 가진 트롤스티겐(Trollstigen). 꼬불꼬불한 도로를 열심히 타고 올라오면, 신세계가 펼쳐진다. 올라오며 생긴 멀미가 다  가실뿐 아니라, 내가 이 풍경의 하나라는 사실이 참 행복하게 만든다.



3. 정상에서 만난 작은 꽃. 이름은 모르지만 작은 요정처럼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4. 서로 다른 곳에서 왔지만, 같은 햇살을 즐기고 있다.




5. 정상에서 즐기는 아이스크림 하나. 음식은 생각보다 많은 추억을 남기는데, 이 아이스크림도 보기보다 꽤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6. 이런 자연을 가진 노르웨이가 샘이 나도록 부러웠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풍경이 있었다면, 우리는 이 자연의 선물을 잘 가꿀 수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나는 차마 답하기 조심스러웠다.





7. 그래도 이렇게 풍성하고 풍부한 자연을 가진 노르웨이가 부러웠다.




8. 근처 캠핑장에 내려와 텐트를 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9.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햇살은 쨍쨍한데 비가 쏴아아 내렸다. 여기 날씨는 썩 좋지 않다고 했던 친구 P의 말이 생각났다. 오늘의 날씨도 '선물'이었구나 생각하니 하루가 더 풍성해졌다.



10. 비가 와도 이곳은 나에게 따듯함으로 남아있다. 감사함이 삶 속에 더해지니 삶은 더욱 풍성해졌다.





글은 청민

사진은 Peter와 청민



부족한 사진일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오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따듯하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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