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자신의 앞에서 알짱거렸다는 이유로.
로맨틱 인디아!(Romantic India!) 처음 인도를 방문했을 적, 내가 외친 한마디다. 첫 인도 여행에서 돌아와서 인도는 로맨틱하다며 주변 지인들에게 얼마나 구구절절 설명했던가. 정작 지인들은 나의 이야기를 하나의 평범한 자뻑 여행기로 치부했지만, 나는 열정적으로 인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인도에서 어떤 자유로움을 느꼈는지 굳이 설명하곤 했다.
또 한 번, 인도를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쌌다. 긴 비행도 힘들지 않았다.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던 것은 바로 인도 공항에서(꼭 밤이어야 한다) 딱 나왔을 적 느껴지던 공기. 나를 감싸는 뜨거운 공기와 여기 저기서 튀어나오던 크락션 소리. 그리고 낯선 설렘. 묘한 낯섦이 주는 새로움이 그리웠다. 파아란 하늘이 슬슬 저물러 갈 때 즈음 찾아오던 인도만이 줄 수 있는 설렘 말이다.
긴 비행을 끝마치고 짐을 후다닥 챙겨 공항에 있는 커피집에서 한 잔의 커피를 시켰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도의 밤으로 빨려 들어갔다. 역시! 내가 생각했던 그 공기, 그 냄새, 그 설렘이었다. 역시, 인도는 로맨틱하지! 나는 또 그렇게 나지막이 나에게 말했었다.
그렇게 두 번째 인도 여행도 나에겐 로맨틱한 추억으로 남아 가고 있을 쯤이었다. 하루는 함께 인도를 찾은 사람들과 함께, 에어컨이 빵빵 나오는 작은 봉고를 잠깐 빌려 델리를 한바퀴 돌고, 저녁식사를 먹으러 이동중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인도의 밤거리는 복잡했고 북적였다. 비까지 와서 길가는 축축했다. 중심가로 가면서 차는 더 밀렸고, 결국 우리는 도로에 한참을 머물러 있었다. 비까지 오는 인도의 도로를 보고 있자니, 꼭 거미줄 같았다.
갑자기 버스가 급정거를 했다. 아찔했다. 몸이 앞 사람 뒤통수까지 닿았다. 마음 속으로 질끈 겁을 먹었지만, 다행히 큰 사고가 난 것은 아니었다. 놀란 마음을 가라 앉히기도 전에, 우리 차를 운전해주시던 운전기사 아저씨가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차를 벗어났다.
차에서 내린 아저씨는 다짜고짜 사이클 릭샤를 몰던 한 꼬마 아이의 뺨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우리의 눈은 토끼 눈처럼 똥그래졌다. 그 거미줄 같은 도로에서 그들을 본 다른 릭샤꾼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을 둘러쌌다. 손님을 태운 릭샤꾼도 있었고, 그냥 길을 가던 행인들도 있었다. 크락션 소리는 이렇게나 시끄러운데 도로는 멈춰버렸다.
꼬마 릭샤꾼은 딱 봐도 어린 소년이었다. 하얀 런닝이었는지 본래 검정 런닝이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때가 타고 축 늘어진 런닝을 입었던 소년. 비를 맞아 까만 머리칼이 더 짙어 보였던 소년. 열다섯 쯤 되보이던 소년은 갑작스런 기사 아저씨의 행동에 놀란 것 같았다. 그 까만 눈을 얼마나 동그랗게 뜨던지. 눈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그에게 기사 아저씨는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며, 검지 손가락으로 소년의 머리를 툭툭 치기 시작했다. 그의 또래로 보이는 꼬마 릭샤꾼들이 옆에서 아저씨 팔을 잡으며 말리는 것도 같았다.
아저씨는 그 감정을 소년에게 다 털어 놓고서야, 다시 우리 작은 봉고로 돌아왔다. 아저씨 옆에 앉았던 한 친구가 말하기를, 그 꼬마 릭샤꾼이 우리 차 앞에에서 답답하게 있었단다. 길을 막은 것도 아니고, 차가 많아서 머뭇거렸다는데. 복잡한 인도의 도로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는데. 아저씨의 갑작스런 행동에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식당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 우리는 한동안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그 소년 이야기를 했다.
그날 이후 딱히 내게 인도는 로맨틱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 사건을 계기로 인도의 현실이 눈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비 오는 날 뺨 맞은 소년 사건은 그냥 이해하고 싶지 않았고 보고 싶지도 않았던 인도의 분위기에 대해 돌아볼 계기가 되었다. 가이드를 자처한 인도에 살던 친구 J는 남은 여행 시간 동안, 인도로 이사를 와서 자신이 본 인도에 대해 아주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제야 내가 갇힌 하나의 껍질이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로맨틱 인디아,- 문구는 사실 내가 만들어낸, 하나의 껍질이었다. 철저한 여행객으로서 가볍게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보려 했고, 그것이 여행객이 가진 무슨 대단한 특권이라 생각했었다. 처음엔 그랬다. 여행을 굳이 머리 써서 복잡하게 만들 필요가 있겠냐고, 누군가 내게 물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비 오는 날 그 뺨 사건(?)은 내가 만나는 모든 세계에 대한 틀을 바꾸어버렸다.
여행을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카메라엔 수천 장의 사진이 담겨있었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싶었다. 처음 인도에서 설렘을 얻어 돌아왔다면, 두 번째엔 이상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왔다. 젖은 머리,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눈, 늘어지고 때가 낀 누런 런닝 그리고 자기 몸뚱이 보다 몇 배는 큰 릭샤를 끌던 소년. 그냥 마음이 이상했다. 그리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거리에서, 학교에서, 골목에서 뺨을 맞고 있는 걸까-란 생각이 내게서 한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스물둘. 어린 나의 인생에 '비 오는 날 뺨 맞은 소년'은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 마음이 이상했다. 그건 어떤 마음이었을까?
/릭샤에 대한 10가지의 시선
1. 인도에선 두 가지 종류의 릭샤를 쉽게 볼 수 있다. 오토바이로 가는 노란 오토릭샤, 사람이 직접 자전거로 끄는 사이클 릭샤.
2. 사이클 릭샤를 처음 탔을 때가 생각난다. 내 몸무게가 무거워서 릭샤꾼이 힘들까 봐 엄청 걱정했었는데, 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알 순 없지만, 아저씨는 쌩쌩 멋지게 도로를 달려주셨다.
3. 인도의 정신없는 거리
4. 비 오는 날에도 릭샤는 운행한다.
5. 릭샤를 굉장히 오래 끌었다는 릭샤꾼을 만났다. 그는 얼마나 오랜 시간 릭샤 위에 있었던 걸까. 어린 나로써는 그의 세월을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6. 도로에서 만난 사이클 릭샤. 머리를 정갈하게 손질하신 할머니는 손잡이를 꼬옥 잡으셨다.
7. 온 가족을 싣고 가는 릭샤꾼
8. 비 오는 날, 손님을 태우고 가는 노오란 릭샤.
9. 인도에 택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짜잔, 이렇게 색이 고운 노란 택시들이 있다. 릭샤만 보다가 택시를 발견하니, 사실 조금 놀랐었다.
10. 인도 공항에서 팔던 오토 릭샤. 언제 인도를 다시 가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땐 용기가 좀 필요할 것 같다.
글과 사진 모두 청민
부족한 사진일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