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죽음이 두려운 사람이 보내는 한편의 편지
멀미가 났다.
여기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온전한 1인칭 시점에서 주어가 사라지고, 오직 풍경만이 진하게 남았다. 회색빛 공기는 뿌옇게 나의 마음을 묘하게 건드렸고, 자작자작 타는 냄새는 온 신경을 자극했다. 난생 처음 보는 풍경에 나는 이미 들어와 있었고, 모험적이던 첫 마음과는 다르게 멀미를 하고 있었다.
멀미는 멈추지 않았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 조심스레 발걸음을 떼었다. 낯선 공기의 흐름에 나는 긴장하며 당황하고 있었다. 떨리는 발을 조심스레 옮겼다. 멀미의 시발점을 찾으면 이 회색빛 멀미가 멈추지 않을까 싶어, 떼던 발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서서 생각을 했다. 생각은 어지러웠지만, 답변은 간결했다. 이것은 낯섦이 주는 두려움의 멀미였다.
다시 발걸음을 떼어, 사람들이 모인 쪽을 향해 걸어갔다. 갑자기 젊은 청년 한 명이 툭 튀어나와, 나에게 영어로 더듬더듬 말했다. '유, 원트, 시?' 그의 질문에 나는 당황했지만, 용기 내어 고개를 한 번 끄덕하며 답변했다. 그러자 그는 '팔로우 미'하며 길을 앞서 걸었고, 나는 그의 발자국에 내 발을 맞추어 뒤 따랐다.
사람이었다.
장작 안에서 타닥타닥 타 들어가는 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갑작스레 느낀 두려움에 나는 좀처럼 앞으로 가지 못했다. 영화나 책에서만 읽었던, 숨이 거둬진 사람-의 그림자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죽음=두려움이란 공식이 뇌리에 박혀서일까, 걸음을 도저히 옮길 수 없었다. 이유 없이 손이 떨렸고,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불안한 마음에 그 자리에 서서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온갖 노력을 했다. 그런 나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은 여전히 눈부시게 시끄러웠다. 타들어가는 장작 근처에 꽤 많은 사람들이 서있었는데, 그들은 전혀 울지 않았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죽음의 길이 내 앞에 열려 있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의지할 곳 없이 나는 서있었다.
머리 속의 오만가지 감정들은 흩어져 뿌연 재가되었고, 내 몸뚱이는 자연스레 인도의 계단에 묶여버렸다. 처음 마주한 존재 앞에서 나는, 하염없이 움츠려 들었고 연약했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나를 이곳에 데리고 왔던 청년이 멈춰있던 내게 다시 돌아와 어설픈 말로 설명을 했다.
"여기가 인도야!(This is India!) 인도 사람들은 죽은 뒤에 뼈가루를 갠지스 강에 뿌리면, 극락에 갈 수 있다고 믿어. 모든 인도 사람들의 꿈이 바로 죽어서 갠지스 강에 뿌려지는 거지. 그 것이 인도 사람들의 단 하나의 소원이이야."
나는 그에게 다시 물었다.
"너의 소원도 바라나시에 돌아오는 거니?"
그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당연하지!"
죽음은 슬프고, 안타깝고, 마음이 미어지도록 힘겨운 것이었다. 적어도 나에겐 너무 먼 이야기였고, 동떨어진 다른 세상의 이야기였고, 언제나 미루고픈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곳은 조금 달랐다. 다시 보지 못하는 당신이 보고 싶지만, 더 좋은 곳으로 가는 당신을 축복하는 자리였다. 당신과 보낸 시간을 추억하는 자리었으며, 다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는 당신을 마음껏 사랑하는 자리었다.
그 곳엔 사랑이 있었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죽음의 자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피어있었고,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안녕이 있었다.
이곳에서 죽음은 멀리 동떨어져 막연히 두렵고 불안한 어떠한 단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의 순리로 여겨지고 있었다. 나와는 다른 죽음에 대한 태도 때문일까, 이상하게도 자유함을 느꼈다. 무언가 형식적으로 정해져 있는 규범에서 벗어난 듯한 자유를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발견했다.
멀미가 가셨다. 바라나시를 빠져나오는 골목에서 말이다.뭐랄까. 좁디 좁은 나의 세상이 조금 확장된, 새로운 기분이었다.
그냥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갠지스강을 등지고 돌아오는 골목에서 나는 생각했다.
객관적으로 예쁘지 않는 나를, 엄마 친구 딸처럼 썩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나를, 앞에서는 괜찮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소심한 복수를 꿈꾸는 나를, 관계가 살짝 비틀어지면 스스로를 공격하고 원망하던 그 누구도 아닌 나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썩 멋진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죽음과 삶이 한데 어우러져 모든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그들처럼.
있는 그대로, 그냥 나도, 그렇게 살아보는 것도 꽤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죽음에서 그리고 나를 옭매고 있는 불안함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져도 괜찮을 것 같다고
반짝이는 갠지스 강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었다.
/12가지의 시선
1. 보이지 않는 끈들에 너무 많이 묶였던 것이 아닐까.
2. "삶은 죽음의 일부이자, 죽음은 삶의 일부인걸!"
3. 그들은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면 죄를 씻을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들은 차분했고 행복하게 웃었다.
4. 인도에서는 그 전에 느낄 수 없던 묘한 그리고 완벽한 자유를 느꼈다.
5. 죽음을 삶의 일부라고 말하지만, 그래도 죽음은 슬프다.
사랑하는 이를 더 이상 보지 못하는 것은, 슬픔에 바다에 잠기는 것과 같다.
6. 갠지스 강을 향하는 골목에서 가장 무서웠던 것은 바로 '소'였다.
꼬리로 나를 얼마나 때리던지. 사실 그 꼬리와 내 옷이 마찰할 때, 그 소리가 더 무서웠다.
7. 그들은 카메라에 찍히는 것을 굉장히 즐거워했다. 포즈를 취해주었다.
나중에 그 이유를 물어보니, 카메라에 영혼이 찍혀 좋다고 답했다.
8. 인도의 숨결은 화려한 회색이고, 인도의 시간은 차분한 회색이다.
9. 물론, 죽음에 대한 그들의 신앙에 내가 동참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다만 죽음을 향한 그들의 시선이 새로웠고, 놀라웠으며, 아름다웠다.
10. 물론 바라나시에서 이뤄지는 장례절차에도 또 다른 시선이 존재한다. 계급에 따라 장례의 장소가 다를 뿐 아니라, 장작의 종류 등 많은 부분이 '돈과 계급'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나의 '첫 충격'을 담고 싶어, 이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11. 거두절미하고, 나는 다시 인도에 가고 싶다.
12. 한 살을 더 먹는 다는 것은, 또 하나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과정인 것 같다.
글은 청민
사진은 Peter와 청민
부족한 사진일기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