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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Jul 13. 2019

찬에게

엄마가 그랬는데, 사랑은 염려하는 자의 몫이래.

#청민의플레이리스트
오늘의 추천곡 2곡입니다. 제가 추천하는 곡은 남매 어쿠스틱 듀오 악동뮤지션의 'officially missing you’이고, 동생이 추천하는 곡은 윌 스미스의 ‘Friend like me’입니다. 서로를 아끼지만 자주 투닥거리는 남매의 모습을 떠올리며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 이 글은 이슬아 작가님께서 연재하신 일간 이슬아 2019년 4월호의 글, <당신이 있어서 깊어요> 중 ‘할아버지가 있어서 깊어요.’라는 문장에서 시작된 글임을 밝힙니다. 매우 감명 깊게 읽은 글입니다!











미웠어. 무엇이든 네게 빼앗기는 것 같아서.


그리고 좋았어.

모든 것을 네게 빼앗길 수 있어서.



너는 어쩌면 오랫동안 억울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깊은 오해에 짜증이 났을지도 모르고. 아주 오랫동안 네가 내게서 많은 것을 빼앗아갔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너도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니. 우리는 어쩌면 서로를 오해하며 억울해하고 있었구나 싶어, 네 마음을 알고 잠시 우스웠어.


네가 떠난다고 해서 하나 고백해보자면 말야. 나는 너를 통해 내가 되었던 것 같아. 너는 몰랐겠지만,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나는 네게 수많은 이름을 붙여줬거든.





너의 첫 번째 이름은 동생이야.


같은 배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는 가족이 되었고, 수백 번을 싸워도 다시 자석처럼 서로의 곁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지. 가끔 생각해. 내 생애 최초로 양보를 알려준 사람이 너라고.


나는 누나였거든. 내게만 쏟아지던 거대한 애정을 갓 태어난 동생이란 존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준비도 되지 않을 채 뚝 떼어 줘야만 했던 누나였거든. 세 살짜리 누나의 미움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단다. 이렇게 돌아보니 미움의 역사가 참 깊구나 싶네.  어린 마음에 네가 질투가 나서,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린애 위에 벌러덩 누웠다가, 엄마에게 가시나 소리를 들으며 등짝을 맞은 기억을 여전히 안고 산단다.






너의 두 번째 이름은 친구야.


세상 모두에게 숨겨도 너에게만은 나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었어. 함께 자란 우리는 서로의 발걸음만 들어도 쟤가 진실로 말하는 건지, 거짓을 섞은 건지 바로 알 수 있었거든.


내가 새벽 일찍 서울을 가야 했을 때, 졸린 눈을 뜨고 기차역까지 함께 나와준 날을 기억해. 너는 세상의 온갖 투덜은 다 털어놓으면서도, 내가 기차를 타고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질 때까지 거기 서 있어 줬잖아.


애인에게 배신당한 날엔 '그 자식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놈'이라고 밤새 욕을 해줬고, 아르바이트에 유니폼을 두고 갔을 때도 (물론 곱게는 아니었지만) 항상 가져다줬어. 너는 나의 친구이기도 했어. 물론 영원히 나보다 어린 녀석이 까불까불 맞먹으려 할 때는 뒤통수를 날려버리고 싶긴 했지만, 그래도 세상에 나와 똑 닮은 사람이 있다면 그건 어쩌면 너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어.





나의 여행가방을 내내 메고 다니는 동생


너의 마지막 이름은 감히 아들이야.


엄마가 했던 잔소리를 나도 모르게 네게 하고 있을 때, 그 잔소리를 가뿐히 무시하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일을 저질러 버려 실패한 너를 바라보며 속상해하는 나를 발견할 때면, 너는 전생에 내 아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곤 해.(물론 나는 전생을 믿지 않지만!)


엄마가 그랬는데, 사랑은 염려하는 자의 몫 이래.


그래서 엄마는 나를 염려하고, 나는 너를 염려하나 봐. 내가 앞서 겪었던 시련은 네가 다 피해 갔으면 좋겠고, 내가 걸려 넘어져 생긴 생채기를 네가 똑같이 입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너보다 3살이나 많은 누나라는 꼴랑 자존심에 꽁꽁 숨겨 놓았던 마음을 이제야 쏟아내는 건 말이야, 내가 숨겨 놓았던 너의 이름을 꺼내 부르는 이유는 말야, 아마 우리가 한동안 잘 보지 못하기 때문일 거야. 너랑 내가 떨어져 사는 건 처음도 아닌데, 네가 영영 떠나는 것 같이 좀 유난스레 서운하다.


그냥 잠깐 멀리 다녀오는 건데, 남들도 많이 가는 그깟 어학연수 몇 년 갈 뿐인데. 나는 우리가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쉽다. 우리가 너무 금방 커버려서, 우리가 전처럼 어린아이가 아니어서.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책임이란 이름 없이 같이 놀던 시절은 훌쩍 다 지나버린 것 같아서. 우리의 시절이 끝나버리는 것 같아서, 그래서 괜히 서운한가 봐.


너무 빨리 어른이 된 것 같아서.



텐트 접는 방식으로 싸우고 있는 중


찬아, 나는 여전히 네가 자주 밉고 얄밉고 그렇지만, 네가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어. 너는 나의 동생이자 친구이자 아들 같은 존재이니까. 내 삶 깊숙이 너와 함께한 시간이 뿌리 잡고 있으니까. 평소엔 네 안부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데, 가끔 심심한 날 네가 아주 조금 보고 싶을 때가 있거든.


그래서 나는 이 서운함을 묻어 놓고 그저 믿어보려 해. 너는 어디에 있어도 잘할 거라고, 행복할 거라고. 내가 언제나 사랑하고 응원할 거니까. 누나의 응원을 받고 훨훨 날아가렴. 더 많은 사랑을 하고 더 많은 기쁨을 누리고,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 누군가의 기둥이 되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렴.



그래서 나는 네가 깊어서 기뻐.

너에 대한 사랑과 미움이 내 속에 깊어서, 정말 정말로 기뻐.






2019년 7월 13일 청민의 말:


그렇다고 저희가 몹시 사이가 좋은 건 아닙니다.

동생과 싸우면 소리 소문 없이 이 글은 어디론가 삭제되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한 때 제 핸드폰에 동생은 '.(온점)'이었고, 동생에게 저는 '이름 없음'이었다고 하면 믿으실까요?)


하지만 서로는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투닥거려도,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평소엔 연락 하나 없고 소식 하나 궁금해하진 않지만,

그 모든 마음 가운데엔 서로를 향한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든 행복하게, 서로 있는 모습 그대로 씩씩하게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이요.


오랜만에 동생을 만났습니다.


(온다고 해서 사실 귀찮았는데,)

그래도 매일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영화를 보고, 혼자서 산책을 하는 제 일상에

까불까불 동생이 들어와서 조금은 재밌어졌습니다.


이렇게 내 삶에 선뜻 들어와 빛을 선물해 줄 때면,

맞아, 사랑하며 사는 삶은 이런 행복을 주었었지! 싶어요.


오늘도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따듯한 하루가 되시기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사랑을 표현하는 하루가 되기를 바라며 :)


오늘도 감사합니다.


(이 글이 올라오는 지금.. 저는 인천의 축구 경기장에 있을거예요.. 동생 때문에.. 살려주세요..)




청민 Chungmin

mail _ romanticgr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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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hungm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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