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워 보았기에 외로운 사람을 발견한 걸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근처 우동가게를 찾았다. 늦은 점심시간이었는데도 우동가게엔 사람이 많았다. 앉을자리라곤 주방을 바로 마주 보는 높은 바 좌석밖에 없었다. 코앞에서 직원들과 마주 봐야 하는 자리라 부담스러웠지만, 피곤과 허기로 지칠 대로 지친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주방 옆에 걸린 거울로 내 모습이 보였다. 모자에 눌린 앞머리, 땀으로 녹은 화장, 시럽과 커피가 묻은 소매. 분명 퇴근을 했는데도 거울에 비친 나는 아직도 퇴근을 못한 듯했다. 만사가 귀찮았다. 빨리 허기를 채우고 집에 가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따듯한 국물이 속에 들어가니 피로가 조금 풀리는 듯했다. 배가 조금씩 차오르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부엌에는 직원 셋이 있었다. 나는 그중 한 명에게 자꾸 눈이 갔는데, 그녀의 가슴팍에 붙은 ‘수습직원’이란 배지 때문이었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 사실 우동을 먹는 내내 모른 척하고 싶었는데, 눈에 자꾸 그녀가 걸렸다. 아마 수습직원인 그녀만 쏙 빼고 나머지 직원끼리만 신나 하는 대화들 때문이었다. 수습직원은 손에 행주를 놓지도 못한 채, 깨끗한 싱크대만 계속 닦고 있었다. 코앞에서 보는 내가 다 민망할 정도였다.
끝까지 그녀의 민망함을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내가 시킨 밥 한 공기 때문이었다. 가게에서 가장 오래 일한 것처럼 보이는 직원이 행주만 만지작 거리는 수습직원에게 부엌 뒷 편의 밥통을 앞으로 가지고 오라고 했다. 수습직원은 처음 해보는 일이었던지, 자기 몸통만큼 크고 뜨거운 밥통을 들고 와선 어쩔 줄 몰라 싱크대 옆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안경을 쓴 직원은 그런 수습직원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고 대뜸 반말로 ‘야, 밥통 더 붙여. 여기에 부으라고.’했다. 그렇게 내가 주문한 밥 한 공기가 나왔다. 안경을 쓴 직원은 환한 미소로 맛있게 드시라 인사했지만, 그 인사에 내 입맛은 쏙 들어갔다. 수습직원은 다시 부엌 구석에서 뭘 해야 할지 몰라 애꿎은 행주만 빨아댔고, 나머지 두 직원은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기 바빴다.
나는 그 장면이 체하듯 가슴팍에 걸렸다. 엄마와 비슷한 나이의 아주머니가 수습직원 배지를 가슴팍에 달고 있다. 일 하는 손이 서툰 걸 보니 전에 식당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왜 식당 일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동료들의 못난 텃세를 견뎌가면서도 행주로 주방을 닦고 있는 걸 보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 같진 않은데. 그렇다면 아주머니 마음은 어떨까. 아주머니 얼굴도 어딘가 체한 듯 경직되어 있었다. 눈칫밥에 단단히 체한 듯했다.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보니, 손이라도 따 줘야 할 것 같았다. 허기와 피로에 수습직원의 감정 따위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내가 그럴 수 없었던 이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설거지 통 근처에서 서성이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농담을 주고받을 때도 홀로 행주를 꼭 쥐고 눈치를 살피는 수습직원인 그녀에게서 내가 보였다.
우동으로 기분 좋게 속을 기껏 데워 났더니, 부엌 속 분위기에 나는 다시 출근을 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도 참. 새로운 일에 적응하기까지 잘 모르는 건 당연한 건데. 못됐어. 좁디좁은 부엌의 분위기는 왜 이렇게 싸늘하고 민망한지. 내가 외로워 보았기에 외로운 사람을 발견한 걸까. 이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을 누군가의 외로움이 눈에 밟혀 먹먹했다.
가게엔 손님들이 더 밀고 들어왔다. 빈 그릇을 앞에 두고 계속 앉아있을 수 없었다. 나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누구에게 손을 내밀까 망설이다가, 수습직원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셔요.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하는 내게 당황한 듯 웃어 보이는 우동가게 수습직원 아주머니. 그녀도 내게 고개를 꾸벅 숙여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2019년 6월 22일 청민의 말:
요즘은 정신을 반쯤 놓고 삽니다.
어떤 말을 어디에 흘리고 돌아왔는지 기억하지 못합니다.
마음은 어딘가 계속 분주한데, 이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6월엔 망원의 어떤 공간을 자주 갔습니다.
그곳을 가려면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하지만,
6월엔 시간이 날 때마다 갔고, 다름 아닌 음식에 자주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곳의 가지 튀김은 정말 너무 맛있거든요.
마음을 반쯤 놓고 삽니다.
어디에 내 마음이 서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바람만 스쳐도 코끝이 아찔한데,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엊그제도 가지 튀김을 먹었는데,
오늘도 가지 튀김을 먹으러 가 볼까 고민합니다.
홀로 보낼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합니다.
오늘은 도서전에 갑니다.
아마 이 글이 올라갈 때면 다녀왔을 거예요.
도서전 브런치 부스, 정말 멋져요. 그러니 내일 꼭 가보세요.
부스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생각하실 거예요.
지금의 저는 궁금하네요.
저녁의 저는 가지 튀김을 먹었을까,
안녕한 마음으로 집으로 잘 돌아올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요.
오늘도 찾아와 주셔서,
어쩌면 일기 같은 짙은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청민 Chungmin
mail _ romanticgrey@gmail.com
insta _ 여행/일상 @w.chungmin
글 @chungmin.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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