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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민 May 19. 2019

흉터

습득된 상처는 얼마만큼의 사랑을 쏟아부어야 괜찮아질까.


그 애는 두 번이나 버려졌다. 엄마 젖을 갓 떼고 입양된 첫 번째 집에선 무슨 이유였는지 그 갓난애를 돌려보냈다. 이유가 없다는 게 그 애가 세상에 나와 버려진 첫 이유였다. 두 번째 입양된 집에선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어서 그 애를 아예 돌보지 못했단다. 그렇게 그 애는 세상에 태어나 두 번이나 가족에게 버려졌다. 두 번이나 돌아온 기억을 안고, 그 애는 우리 이모 집으로 세 번째 입양을 왔다.



이모에게 예쁘다, 예쁘다 얘기만 듣다가 만난 초코는, 정말이지 예쁘다는 말보다 더 예쁘장한 강아지였다. 보는 순간 꼭 안아주고 싶을 정도였다. 성격도 참 살가웠다. 처음 보는 낯선 내 품도 잘 파고들었다. 부르면 부르는 대로, 아니 부르지 않았는데도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다. 귀여운 재롱에 머리를 쓰담쓰담했더니 신이 났는지 내 품을 더 파고들었다. 가족인 이모가 불러도 내 품에 가만히 앉아있는 게 귀여워 심장이 쿵, 기분 좋게 내려앉았다.


초코의 예쁨에 홀딱 반해 나도 초코의 가족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기대는 금방 서운함으로 변했다. 초코야 나 이제 집에 가야 해. 초코는 내가 신발을 신을 때까지 문 앞에서 가지 말라고 앵앵 우는 소리를 내다가, 현관 손잡이를 잡는 순간 고개를 휙 돌려 이모에게 달려갔다. 더 이상 앵앵 짖지도 않고,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콧방귀를 흥! 뀌고 서운해 돌아서는 느낌이 아니었다. 내가 가든 말든 이젠 상관없는 것처럼 이모에게 안겼다. 어제오늘 나랑 그렇게 붙어 있었으면서, 너무 쉽게 정을 떼는 것 같아 좀 서운했다.


오랜만에 초코를 떠올린 것은 엄마가 이모 병문안을 다녀오고 나서다. 교통사고라 해서 되게 걱정했는데, 병문안을 다녀온 엄마는 고개를 저었다. 하루 종일 초코 얘기만 듣다가 왔단다. 왜 누군가에게 마음이 쓰이면, 그 사람 얘기만 하지 않던가. 이모는 입원해 있으면서, 집에 혼자 있을 초코가 신경 쓰였던 모양이다. 초코가 또 버려졌다고 생각할까 봐, 며칠 내내 보지 못한 이모 때문에 또 버려졌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을 했다.


초코가 처음 이모 집에 왔을 땐, 이름을 불러도 시큰둥, 산책을 나가도 시큰둥했단다. 사람에게 잘 붙는 건 최근의 일이라고. 나는 초코가 사랑이 많아서 원래 사람에게 잘 붙는 줄 알았는데, 이모 말에 의하면 그건 사랑해달라는 초코의 표현이란다. 사람을 좋아해서 싹싹한 게 아니라, 어떻게든 자기 좀 사랑해달라는 초코의 언어라고 했다. 사랑해 달라고, 안아 달라고, 자기를 돌려보내지 말아 달라고. 이모가 초코의 몸짓을 그렇게 읽게 된 건, 초코가 떠날 사람을 대하는 행동 때문이라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니 이모집을 나설 때 내게 돌아서는 초코의 모습이 다시 읽혔다. 초코는 알았던 것이다. 내가 떠날 사람이란 걸, 내가 이 집을 떠나 금방 오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그제야 이모가 초코 얘기를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며 말을 맺었는지 알 것 같았다. 사람이고 동물이고 상처 받는 건 모두가 다 똑같았다. 세상에 슬픔을 품고 사는 생명이 얼마나 많을까. 그래도 초코는 다행이었다. 이제 초코 곁엔 초코를 이해하는 존재가 생겨서, 초코의 속마음에 귀 기울이는 존재가 있어서.


습득된 상처는 얼마만큼의 사랑을 쏟아부어야 괜찮아질까. 얼마만큼의 큰 애정을 쏟아야만 빈 가슴이 채워질까. 버려졌다는 깊은 상처가 다 사라지진 않겠지만, 그래도 이모의 사랑으로 상처를 흉터로 아물게 만들 수 있진 않을까. 처음 이모 집에 왔을 때 사람에게 다가가지도 않았던 초코가 이젠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듯, 상처가 흉터가 되듯이. 완전히 사라지진 않겠지만 조금씩 아물 수 있진 않을까. 이모와 초코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2019년 5월 18일 청민의 말:


사랑의 힘에 대해 고민합니다.

아무래도 사랑이 주는 가장 큰 힘은.. 용기를 준다는 것 아닐까요.


지난 상처를 이겨 낼 용기를 주고

두렵지만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는 것-


초코가 앞으로 오래오래 이모와 행복하길 바랍니다.

이모의 사랑으로 초코가 따듯하길 바랍니다.


이모에게 마음을 연 초코처럼

우리도 누군가의 사랑으로 어떤 용기를 얻기를 또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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