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벌새』와 시나리오 책 『벌새』를 보고 쓰는 글
"다들 우리한테 미안하기는 할까?"
1.
영화 『벌새』속 은희에겐 일상의 폭력들이 가해진다.
식탁에 앉아 자신의 분노를 쏟아내는 아빠, 은희의 불편함은 상관 없는 언니와 쉽게 폭력을 행사하는 오빠, 오빠의 폭력을 '그만 좀 싸워'라는 말로 단정짓는 엄마, 사랑 받고 싶어했던 자신의 마음을 쉽게 꺾어 버린 친구와 남자친구와 후배까지.
2.
그런 은희에게 한문 선생님인 영지는 묻는다.
"은희는 아는 사람이 몇 명이에요?"
"한 400명?"
"그럼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에요?"
노래방 대신 서울대를 가자는 구호를 시키는 담임 선생님이나, 오빠의 폭력에도 '그냥 좀 싸우라'고 방관하는 엄마나, 도둑질로 경찰에 넘기겠다는 문구 아저씨의 말에도 그냥 경찰에 넘기나는 아빠 사이에서 은희는 어른들에게 날라리가 아닌 착한 아이가 되라는 말만 들었다. 누구도 은희에게 가해지는 일상의 폭력을, 그 폭력 속의 은희의 세상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그리고 은희에게 더 이 오빠에게 맞지 말라고, 네 마음을 들여다 보라고 말해주는 어른은 영지가 처음이었다.
'은희 너는 뭘 좋아하니?'라고 물어준 영지에게 은희는 처음으로 마음을 이해받는다. 은희가 겪어온 불편함은 은희가 잘못되어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고, 알아주는 첫 어른. 영지와 은희는 마주보고 앉아 따듯한 우롱차를 마신다.
3.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아,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
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4.
죽지 않을 것 같은 김일성이 죽고,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성수대교가 무너졌다.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던 것들이 무너지는 세상에서, 은희의 영지의 죽음을 알고 돌아온 날, 엄마에게 자살한 외삼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엄마, 외삼촌 보고싶어?"
"그냥 이상해. 니네 외삼촌이 이제 없다는 게?"
영화의 엔딩에서 은희는 (간발의 차로 성수대교 사고를 피한)언니와 언 남자친구와 함께 무너진 성수대교를 보러 길을 나선다. 그리고 무너진 다리를 정면으로 바라본 뒤 눈을 꼭 감는다. 은희는 다리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5.
은희는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라고 영지에게 보낼 편지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영지가 은희에게 마지막 쓴 편지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그때 만나면 다 이야기해 줄게."
그때 만나면 그들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마주 앉아 우롱차를 나눠 마시며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6.
영화로 『벌새』를 만나기 전에, 시나리오를 먼저 읽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마음이 둥 울렸는데, 영화로 살아 숨쉬는 풍경을 바라보니 마음이 바다 결처럼 속에 흐르는 듯 했다.
벌새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라고 한다. 다 자라도 5cm밖에 되지 않지만, 빠른 날갯짓으로 날아다니며 꿀을 먹는 새라고 하는데. 영화를 보고서야 제목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았다.
정말 좋았던 영화. 시나리오 책과 꼭 함께 보기를 추천한다.
글쓴이 │ 청민(淸旻)
romanticgrey@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