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민 Nov 07. 2021

퇴근 후 떠난 자전거 캠핑

퇴근 후 자전거│ written by 루비

퇴근 후 자전거│ by. 루비

퇴근 후 자전거 캠핑을 떠났다.


오후 6시 땡! 하자마자, 짱짱한 스프링처럼 회사에서 튕겨 나왔다. 자전거 뒤에 묵직한 캠핑 가방을 싣고, 한강을 따라 무작정 달렸다. 공원의 전광판에는 오늘 온도가 무려 31도라고 떠 있다. 습도도 높단다. 이마에선 이미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나 내일 다시 출근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소속이 바뀌었다. 입사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론 기존에도 팀 이름이 조금씩 변경되곤 했지만, 맡고 있던 출판 마케팅 업무는 동일했다. 출간된 책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일, 그러니까 책이란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살피고 돌보는 일. 2년 반 넘게 같은 일을 배웠는데, 소속이 바뀌며 숲 전체를 살피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한순간 달라진 환경에 스위치 전환이 잘 안 되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 것 같은데... 그러니 막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익숙해져야 하는데, 서둘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마다 혼자 복잡해졌다.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오히려 잘하고 있다는 다정한 격려만 받았는데) 스스로 만든 조급의 패턴은 나를 자꾸만 무력하게 했고, 평소 같으면 하지 않을 실수를 반복했다. 다시 레벨 0이 된 느낌, 뭐가 뭔지 모르는 신입사원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그러다 달력을 보고 문득 깨달았다.

아, 나 6월에 한 번을 못 쉬었구나.


당장 핸드폰을 열어 캠핑장을 예약했다. 회사 근처 퇴근하고 바로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으로. 목요일에 퇴근박을 하고, 금요일에 출근까지 하고 돌아와야지. 무리인 걸 뻔히 알면서도,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쉼표였다. 억지로라도 쉼표를 찍고 한 박자 쉬어갈 수 있는 틈을 주는 일.


ⓒ청민


막상 퇴근 후 캠핑을 가려니 가방은 무겁고 날은 유난히 더웠다. 도착도 전에 티셔츠가 땀으로 젖었다. 그런데 왜 페달을 밟으면 밟을수록 마음이 가벼워지는 걸까? 캠핑장에 도착해서도 끊임없이 움직였다. 침낭을 꺼내고, 텐트를 치고, 자전거를 옮기고.. 오랜 시간 땡볕 아래서 땀을 흠뻑 흘려도, 낯선 곳에서 혼자 자야 해도 마음이 하나도 조급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시간을 들여 무언가를 해내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가족과 캠핑을 하면서 배운 여유는 나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캠핑장을 예약하고, 캠핑 가방을 미리 준비하고. 캠핑이란 단어 안에 크고 작은 시간이 필요한 걸 알고 또 잘 견디는 사람이면서, 왜 일에는 그 여유가 적용되지 않는 걸까. 일하는 과정 과정 마다 조급해하는 걸까. 모든 일에는 시간이 필요한 데 말이다.


어느새 태양도 고개를 넘어갔다. 들리는 거라곤 사람들의 조용한 말소리와 밤바람에 스치는 나무 소리뿐. 그럼 나는 텐트 밖으로 나와 사진을 남긴다. 조리개를 활짝 열고 텐트 앞에 앉아 지금을 담는다. 고요 속에 있다는 게 좋아서. 타이머를 설정하고 카메라를 바라본다. 깜깜한 밤이 되고 진짜 혼자가 되었을 때 알았다. 이제야 내 템포 대로 숨을 쉬고 있구나, 조급해하지도 빠듯해 하지도 않고 내 속도를 맞추고 있구나 하고.


그런 의미에서 캠핑은 나만의 속도를 찾아가는 일이 아닐까. 땀범벅이 된 다리에 모기를 자꾸 쫓아내고, 무거운 가방을 이끌고 내일 다시 출근해야 하는데도. 모두가 ‘무리’라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이제야 좀 내가 된 것 같다.


새소리를 들으며 일어난 아침. 옷을 갈아입고 캠핑장에서 출근할 준비를 한다. 침낭을 정리하고 텐트를 탈탈 털어 다시 접는다. 퇴근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둘러야 하는데도, 마음이 촉박하지 않다. 뭐랄까, 오늘을 아주 잘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목요일 자캠으로 다녀온 퇴근박!


* 자캠: 자전거 캠핑, 퇴근박: 퇴근 후 떠나는 캠핑


* 수요일 밤 8시                  

일단 내일 캠핑을 가야 하니까 주섬주섬 짐을 싸기 시작한다. 지난주에 미리 캠핑장을 예약했으면서 오늘까지 잊고 있었다. 캘린더의 알람이 울리고서야 '아, 내일 캠핑가는 날이네...?' 떠올리는, 기억력 0의 나는야 3년 차 직장인.





* 목요일 오후 6시                

드디어 출발. 부끄러우니 다른 분들 눈에 띄지 않도록(!) 조용히 자전거와 가방을 1층으로 가지고 온다. 짐을 싸고 출발.. 하려는데 왜 이렇게 덥지? 오늘 무려 31도란다. 습도도 최고다. 출발도 전에 이마와 목에서 땀이 흐른다. 나.. 내일 출근할 수 있니?






목요일 오후 6시 30분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달린다. 캠핑장까지는 자전거로 30분. 달리면서 마주하는 풍경이 온통 초록초록하다. 초록이 아름다워진 걸 보니 정말 여름이 왔나 보다.





*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캠핑장에 도착해 발열 체크와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작년 여름에 사고 한 번도 펴보지 못한 나의 예쁜 하계용 보라색 텐트. ...아! 저의 텐트 색과 애사심은 전혀 상관 없음을 미리 밝혀둡니다.(^^;)







 목요일 저녁 7시 50분                 

자전거는 접어서 텐트 한쪽에 넣어 두었다. 브롬톤은 폴딩 된 자체로도 예쁘다. 보고만 있어도 예뻐서 기분이 좋아지는군. 해가 지기 전에 어서 밥부터 챙겨 먹어야지.






* 목요일 밤 10시 30분                

이제 캠핑장의 모두가 텐트 안으로 들어가는 시간. 들리는 거라곤 여름 밤바람에 나무가 스치는 소리와 개구리 소리뿐. 개굴개굴 노래를 들으며 텐트 앞에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아무리 피곤해도 밤엔 꼭 텐트 앞에서 사진을 남겨둔다.






* 금요일 아침 7시                

'회사 가자! 일하러 가야 해!'하는 의지로 텐트를 철수한다. 여름은 여름이다. 아침부터 덥다. 9시 30분까지 출근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 금요일 아침 9시 30분                

무사히 출근 완료. 오늘도 자전거와 등장한 루비. 옆자리 셀린님에게 조용히 메신저가 왔다.


- 셀린: 루비, 안 피곤해? 괜춘?

- 루비: 네네 괜찮아요. 저는 캠핑 다녀오고 나면 이상하게 더 쌩쌩해요.(평소보다 말 더 많음)

- 셀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전거 캠핑 브이로그(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nJsAFpzOmTM

영상으로 보는 자전거 캠핑 + 퇴근 박. 여기를 클릭하면 바로 브이로그로 이동합니다. 본격적으로 고생하는 루비를 볼 수 있.. 







퇴근 후 자전거

직장인 셀린과 루비의 사이드 프로젝트. 두 직장인이 퇴근 후 자전거를 타며 발견한 장면을 번갈아 가며 기록합니다. 늦봄부터 한여름까지 이메일로 총 12회 연재합니다.(6.10 - 8.26)


퇴근 후 자전거 발행인

따릉이로 한강을 달리는 셀린 @bluebyj

브롬톤 라이더 루비(청민 부캐) @w.chungmi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