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민 x Thousand Korea │ 자전거 에세이 #2
요즘 누나 마음을 알 것 같아
올해 초,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동생 찬은 전화기 너머로 자주 이렇게 말했다. '누나가 왜 그렇게 퇴근 후에 자전거만 탔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 나는 엄마 아빠랑 같이 살아서 좀 괜찮은데, 누나는 혼자 새로운 도시에서 어떻게 버텼냐. 크, 대견해!'
농담 섞인 특유의 말투로 말하고 있지만, 너 힘들구나.
짧은 말 한마디에서 나는 동생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 하나하나 다 말하진 않지만, 우리는 같이 자란 남매였으므로 모를 수 없었다. 아마 3년 전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겪었던 감정을 동생도 겪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 사회라는 게 그렇지. 지금껏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상관없이, 사회에선 사회의 언어를 새롭게 배워야 하니까. 그 사이에서 오는 쌉쌀함과 쓸쓸함은 아무리 모른 척하고 싶어도 쉽지 않을 것이다.
'자전거 하나 줄까? 나 새로 자전거 사서 예전 자전거 있는데.'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미니벨로를 구입하면서, 이전에 탔던 자전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1년밖에 타지 않아서 나름(!) 깨끗했고, 조금 손 보면 더 오래 달릴 수 있는 녀석이었고.. 또 나는 그 시절을 자전거를 타며 이겨냈으니까. 동생은 망설임 없이 좋다고 했고, 나는 네가 좋다고 말할 줄 알았다. 우린 자전거와 롤러브레이드를 좋아하던 어린애였고, 유년의 취향은 어른이 되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동생에게 자전거를 주기 전에 자전거 정비소를 먼저 들렀다. 정비소에서 나사도 조이고 기름도 칠하고 세차도 하고. 전조등과 벨도 새것으로 사서 달아주었다. 아무리 내가 타던 자전거를 주더라도, 선물처럼 깨끗하고 단정하게 설렘을 담아 주고 싶었다. 남아서 주는 게 아니라, 정말 아껴서 주고 싶은 거니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테라코타 헬멧도 챙겼다. 우리 마음과 상황이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헬멧도 깨끗하게 닦았다. 너는 나랑 좀 많이 닮았으니까, 이 색도 참 잘 어울릴 거야.
마지막으로 정비한 자전거가 잘 달리는지, 테스트를 해보려고 집 근처 호수 공원으로 라이딩을 나왔다. 이제 이 자전거와도 정말 안녕이구나. 곁을 떠난다고 하니 괜히 드는 섭섭함.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퀴는 평소보다 더 쌩쌩 잘 나가는 것 같았다. 내내 페달도 뻑뻑했으면서 오늘은 경쾌하게 리듬을 타고, 브레이크도 더 부드럽게 잘 잡히고... 정비소를 다녀온 덕이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달리다 보니 첫 자전거와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나의 첫 자전거 레체. 퇴근 후 시한폭탄 같은 마음을 안고 나와 달려주고, 끈기 없는 내게 처음으로 '너도 꾸준히 달릴 수 있어!'라고 격려해준 자전거. 도시형 미니벨로면서 자꾸만 오프로드를 달리던 나의 변덕을 조용히 인내해 준 자전거이기도 했지.
나는 이 자전거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다. 바퀴 위에서 자유롭게 달리며 하루를 차분히 정리할 줄 아는 사람, 새로운 환경에서 느리지만 유연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 그리고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지. 서운함은 아마 이렇게 좋은 기억이 가득해서 드는 걸 테니, 서운함도 그냥 고마움의 일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동생도 이런 마음을 곧 알게 될 테지. 달려야만 버려지는 마음이, 그리고 달려야만 채워지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레체와 호수공원을 달리며 생각했다. 내가 네 누나라서 다행이라고. 동생이 언젠가 겪어야 할 일들을 내가 먼저 나서서 겪어서, 그래서 동생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쪽이 나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 있는 모든 돌멩이를 치워줄 순 없지만, 그래도 동생 찬이 살다가 힘들 때 그의 손에 툭 무언가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거운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애를 쓸 때, 곁에서 자전거를 슥 건넬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쓰던 자전거와 헬멧을 주는 건데도, 오랜만에 누나 노릇을 한 것도 같아 내 스스로가 좀 대견하기도 했다.
동생은 나의 자전거인, 아니. 이젠 동생의 자전거가 된 레체와 함께 열심히 출퇴근을 한단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테라코타 헬멧을 단단하게 조이고, 자전거 앞뒤 불을 환하게 켜고, 직장과 집 사이를 열심히 달린다고. 다시 자전거를 타니, 동생은 생각보다 더 좋다고 했다. '좋다!' 그 짧은 말 안에 또 어떤 마음이 담긴 지 알 것 같아서 괜히 애틋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줄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너는 알까. 네가 좋아해 주니까 내가 더 좋은 마음을, 꼬맹이 내 동생 찬은 알까. 다른 길을 달리고 있지만 우리는 자전거로, 사랑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아서 괜히 누나 마음이 오랜만에 따듯했다고. 그러니 달리는 네 마음도 오래오래 따스웠으면 좋겠다고.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줄 수 있어서
얼마나 기쁜지 너는 알까.
네가 좋아해 주니까
내가 더 좋은 마음을.
글쓴이 │ 청민(淸旻)
romanticgr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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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콘텐츠는 Thousand Korea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