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민 x Thousand Korea │자전거 에세이 #3
'너는 참 씩씩해.'
유난히 호기심이 많고 겁이 없어서 어려서부터 많이 들은 말이다. 달리고 뒹굴고 넘어지고, 언제나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는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수돗가에서 '으어, 시원해!' 외치며 머리를 감곤 했으니, 또래 애들이 보기에 얼마나 특이해 보였을까.
본투비 아웃도어를 사랑하는 집에서 태어났다. 누구에게나 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나는 성질이 있다면, 나와 동생에겐 씩씩함, 겁 없는 모험가 같은 수식어일지 모르겠다. 회전목마는 시시하니까 롤러코스터를 3번 연속 타던 애들. 어렸을 때 엄마가 가끔 보내주던 플레이 타임을 시작으로 차곡차곡 다져진 모험가 기질은 또래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덕분에 동생과 내 다리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씽씽카를 타다가,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가, 꽈당. 다리엔 늘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있었지만, 뭐 금방 나을 거니까. 놀다 보면 긁히기도 다치기도 하는 거지,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달까.
사고뭉치 천방지축 남매를 둔 엄마는 우리가 동네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두셨지만, 딱 한 가지에는 엄격하셨다. 반드시 보호 장비를 착용할 것. 헬멧을 쓸 것, 인라인을 탈 때는 손목과 무릎, 팔꿈치 보호대를 찰 것. 어린 마음엔 보호 장비가 답답하고 둔탁하고 못생겨 보여서, 집을 나오자마자 다 풀어 헤쳐서 집 앞 화단에 숨겨 놓고 놀고 그랬다.
그러다 동생은 인라인을 타고 슝 내려오다가 머리를 꿰매고, 나는 자전거 뒤에 매달려 가며 놀다가 아스팔트에 양쪽 무릎을 시원하게 갈아 들켜버렸지만. 몸에 아주 작은 상처라도 나는 날엔 상처가 쓰라리고 아픈 것보다, 엄마에게 혼이 날까 봐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하겠다고 도망치던 날도 있었다. 보호 장비를 꼭 착용하고 놀라던 엄마와 엄마 눈을 피해 보호 장비를 벗던 청개구리 남매였다.
엄마의 말은 꼭 들어야겠다고 깊게 알게 된 건, 할아버지의 자전거 사고 이후였다. 다행히 긴 시간을 거쳐 건강을 회복하셨지만, 그 사고 이후 우리 집에선 '자전거를 타고 올게'라는 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구 하나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되었고, 자전거를 타게 되어도 차가 하나도 없는 공원에서만 타야 하는 게 암묵적인 약속이 되었다.
그래서 독립 후 다시 자전거를 타기로 결심했을 때, 헬멧부터 샀다. 내가 사는 고양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아주 많은 도시였고, 호수 공원 중심으로 자전거 도로가 잘 닦여 안전했지만 그래도... 삶이란 평안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언제든 쉽게 낯빛을 바꿀 수 있는 존재였고, 엄마의 오랜 말이 마음에 콕콕 걸리기도 했고, 또 1인 가구의 안전은 스스로 챙기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루는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다가 체인이 빠져 코너에서 크게 미끄러졌다. 비가 온 후에 크게 고인 웅덩이를 피하려다가 페달을 세게 밟는 바람에 체인이 빠졌고, 중심을 잃은 나는 웅덩이로 촤르륵 넘어졌다. 주변에 걷던 사람들이 놀라서 뛰어와 괜찮으냐고 물었지만, 부끄러움이 더 큰 나는 괜찮으니 그냥 가라고 하며 사람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흙 웅덩이에 꼼짝없이 더 누워 있었다.
혼자가 되니 밀려오는 쓰라림. 홀딱 젖어버린 옷의 찝찝함, 욱신거리는 손목. 겨우 몸을 일으켜 세워 바짓단을 올려보니, 무릎과 팔꿈치가 아스팔트 결대로 크게 쓸렸다. 눈으로 상처를 보니 더 통증이 커졌다. 가지고 있던 생수로 상처에 덕지덕지 붙은 모래를 급하게 떼어 내고, 절뚝절뚝 거리며 무거운 자전거를 의지하며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데 괜히 눈물이 핑 났다. 아프고 뭔가 서글프고. 그리고 오래전 엄마가 어린 내게 보호 장비를 꼭 착용하고 나가라던 말이 자꾸 떠올라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도 사랑이었구나.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는 집으로 다치지 않고 돌아오는 것도 사랑이었다. 똑같이 흘러가고 별것 없는 하루의 끝에 아무 일 없이 돌아오는 거, 그래서 다시 내일을 평범하게 이어가는 그것도 사랑이었구나. 언제나 뒤늦게 깨닫는 딸은 어른이 되어서야, 어른이 되어서 혼자 다치고 나서야 돌아오는 것도 사랑이란 걸 깨닫는다.
‘늘 몸 잘 챙기고. 아프다 싶으면 바로 전화하고.’ 전화를 끊을 때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던 엄마의 목소리. 혼자 살며 외로움을 훌쩍 배워버린 딸은 어렸을 때처럼 상처 앞에 ‘놀다 보면 다치기도 하는 거지!’라는 말을 뻔뻔하게 꺼내지 못하겠다. 그리고 꼭 다짐했다. 다치지 말아야지. 안전해야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평범하게 하루를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는 집으로
다치지 않고 돌아오는 것도 사랑이구나.
글쓴이 │ 청민(淸旻)
romanticgre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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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콘텐츠는 Thousand Korea와의 협업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