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생각들, 괴로움들을 글로 적어보시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그날에 대한 기억은 산산히 부서진 거울처럼 조각나 날카로운 형상을 하고 내 머릿속에 박혀 있다. 내가 들은 것, 예를 들어 구급대원의 다급한 목소리나 마지막을 말했던 의사의 지친 목소리 같은 것은 음성 파일처럼 선명히 재생된다. 내가 본 것, 병원 복도의 무미건조한 흰색 타일이나 경찰차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던 회색빛 풍경은 고해상도 이미지로 박제된 채 정지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보고 듣던 순간 내면에 휘몰아쳤던 감정의 폭풍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스템의 모든 자원이 외부 정보 처리에만 할당되어 내부 감정은 저장되지 않은 것처럼.
나는 내 몸이라는 껍데기가 병원과 경찰서, 텅 빈 집을 기계적으로 오가는 것을 제3자의 시점으로 지켜보는 듯했다. 눈에서는 액체가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깊은 슬픔이라는 감정의 직접적인 결과라기보다는 극심한 충격을 받은 신체의 원시적인 물리적 반응에 가까웠다. 감각보다 현상이 먼저였다. 칼에 찔린 몸이 통증을 인지하기 전에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먼저 목격한 것과 같은 비현실적인 무감각 상태. 당시 나의 정신은 수면 아래로 깊이 가라앉아 현실의 모든 자극을 차단하고 있었다.
장례식장 특유의 싸늘한 국화 향이 코끝을 맴돌았지만 통증은 여전히 부재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그림자처럼 다가와 위로의 말들을 건넸다.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국어처럼 웅웅거리며 귀를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 더 힘들 텐데" 누군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해석할 수 없었다. 지금 이 무감각보다 더한 고통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절차가 끝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닫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켜켜이 쌓였을 때. 진짜 통증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온 병사의 몸에 박혀있던 총알이 뒤늦게 존재를 맹렬하게 주장하며 몸속의 신경망을 찢고 나오는 것 같았다. 뇌를 지배하던 아드레날린의 장막이 걷히자 마비되었던 신경계가 비로소 제 기능을 시작했다. 통증은 신경계를 따라 깨끗한 물에 잉크가 번지듯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뼈와 근육 사이의 모든 틈새를 비집고 스며든 어떤 이물질 같은 감각이었다. 심장은 불규칙하게 요동쳤고 이 고통이 현실임을, 나는 아직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장례식장, 그분의 영정 사진 앞에 홀로 앉아 말했다. 그분이 천국에 갔다는 확신. 그 확실한 증명만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대가라도 기꺼이 치를 수 있다고. 그것을 위해 매주 일요일 아침 교회 의자에 앉아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 계약을 이행할 생각이었다.
칼날같은 통증은 멈추지 않았지만 난 교회 다니기를 멈추지 않았다. 매주 맨 뒷자리에 앉아 멍하니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다. 내 귀에는 목소리가 아닌 내면의 고통스러운 울림만이 가득했다. 예배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빛은 바닥에 알록달록한 무늬를 만들고 있었지만 그 아름다움조차 내 눈에는 무채색의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하느님, 혹시 이것이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면. 그분을 천국에 올리기 위한 대가로 내가 지옥에 떨어지는 형벌을 받고 있는 것이라면. 그렇다면 이 형벌의 기간은 언제까지입니까.
존재 자체가 한 덩어리의 고통이 되고 세상의 모든 사물이 2차원의 평면처럼 납작하게 보이기 시작했을 때.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게 더 나은 선택지처럼 느껴질 무렵, 나는 휴대폰을 들어 심리 상담을 예약했다. 선생님은 하나의 방법을 제안했다. 통제 불능의 감각과 걷잡을 수 없는 생각들을 통제 가능한 문자의 형태로 옮겨보는 것.
"지금의 생각들, 괴로움들을 글로 적어보시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어요"
통증의 완전한 제거가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그 원인과 구조라도 분석해봐야 했다. 감정의 미로 속에서 나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글이라는 지푸라기를 잡았다. 그것이 이 모든 기록의 시작이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고통을 담아내며 나는 어둠 속에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