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기록 : 진단 / 두꺼운 문

by 낭만피셔

[꿈의 기록 : 진단]

꿈 속에서 우리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거실에는 TV 소리만이 희미하게 울렸고 그분은 품에 잠든 아이를 조심스럽게 토닥이고 있었다. 창밖은 이미 깊은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그분의 얼굴은 유난히 창백한 빛을 띠고 있었다. 나는 애써 그 빛깔을 조명 탓이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며칠 전부터 그녀는 소화가 잘 안된다고 부쩍 피곤하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에는 그늘진 얼굴에 묻어나는 피로의 빛이 너무 짙었다. 내 안에서 작은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심장을 갉아먹는 듯했다.


나는 TV 소리에 묻힐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 응급실 가서 검사받아 봐요."


그것은 제안이라기보다 내 안의 불안이 만들어낸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녀는 잠든 아이가 깰까 봐 숨소리마저 죽인 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그 짧은 대답은 마치 메아리처럼 내 귓가에 남았다.


그 순간, 시끄럽게 울리던 내 안의 경보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안도감이라는 이름의 아주 얕은 마취 상태. 나는 그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고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믿었다.




[꿈의 기록 : 두꺼운 문]

어느 날이었는지, 그곳이 어디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콘크리트 보도블록 위를 나란히 걷던 평범한 오후의 감각은 선명하다. 내 손을 잡은 그분의 손은 유난히 차가웠고, 우리 곁을 스쳐 가는 소음들은 우리와 상관없다는 듯 멀게만 들렸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아득한 저편에서 울리는 듯했다.


간밤에 꾼 꿈의 잔상이 끈질기게 의식의 표면을 맴돌았다. 떨쳐내려 해도 사라지지 않는 눅눅하고 불길한 감각. 나는 그 불길함을 해소하고 싶어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어젯밤에 안 좋은 꿈을 꿨어요"


나는 꿈의 내용을 필름을 되감듯 천천히 재생했다. 당신이 갑자기 내 곁을 떠났고 남겨진 나는 아주 오래도록 슬픔 속을 헤맸다고. 꿈속의 나는, 지금 이렇게 당신 손을 잡고 아무렇지 않게 말 한마디 나누는 것을 간절히 바랐다고. 목소리는 점차 흐려졌지만 내 안의 절박함은 더욱 선명해졌다.


이야기를 마쳤지만 그분은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시선은 정면의 보도블록 끝을 향한 채 두 뺨 위로만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닦아낼 생각도 하지 않는 눈물이었다. 우리의 침묵은 눈물처럼 공기 중에 내려앉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리의 침묵은 목적지인 건물 앞에 도착하면서 자연스럽게 끝났다. 나는 더 이상 그분을 따라 들어갈 수 없었다. 그분은 나를 바라봤고 난 이별의 이유도 모른 채 그녀에게 잘가라는 인사를 건넸다.


육중한 철문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닫혔다.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두껍고 거대한 문. 나는 그 문이 다시 열리지 않을 것 같다는 비합리적인 생각에 사로잡혔고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발걸음을 돌려 혼자 돌아오는 길, 나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마다 문은 조금의 미동도 없이 굳게 닫혀 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그 두꺼운 문 앞에서 끝난다. 나는 여전히 그 문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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