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일요일 오후, 황금빛 햇살이 대시보드 위에 비스듬히 내려앉았다. 하루의 끝자락이 다가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늘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교회의 주차장 출구.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눈앞의 차단기는 미동도 없이 굳게 닫혀 있었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앞을 가로막은 것처럼. 일상에 아무렇지 않게 스며들어 있던 익숙한 절차에 생긴 사소한 오류. 평온한 척 가면을 쓰고 있던 세상의 표면에 아주 작은 균열이 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경비실에서 나온 어르신은 감정이 없는 눈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흡사 오래된 감시 카메라의 렌즈처럼 무미건조했다. 절차를 따를 뿐이라는 듯,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맞냐며 소속 교구를 물었다. '내가 몇 교구였지?' 머릿 속을 헤집었지만 기억의 표면이 흐릿했다. 손에 들린 휴대폰을 꺼내 잠금을 풀고 엄지손가락으로 화면을 수직으로 밀어 올렸다. 무의미한 안부와 가슴 아픈 약속들이 픽셀의 잔상으로 스쳐 지나갔다. 기억의 퇴적층 가장 아래, 먼지 쌓인 지층 속에서 그분과의 대화 기록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속에서 '28교구'라는 단어가 발굴되었다.
하지만 내 이름이 명단에 없다는 건조하고 냉정한 사실이 돌아왔다. 그 말이 전부 흩어지기도 전에 의지와 상관없이 목구멍에서 다른 이름이 새어 나왔다. "김지윤으로 확인 한번 해주실래요?" 뱉고 나서야 이제는 효력이 없는 주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예상대로 그 이름 역시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담당 목사님과의 대화창을 열어 내밀었다. 액정 화면 위에는 장례식의 날짜와 시간, 절차에 관한 사무적인 단어들이 선명했다. 그것은 차갑게 각인된 비석의 문구 같았다. 경비원은 화면 속에서 '장례'라는 글자를,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는 내 휴대폰 안에 보관된 디지털 묘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이제 약간의 인간적인 호기심이 섞여 있었다. "누가 돌아가셨나 봐요?"
나는 간신히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제야 차단기는 아주 느린 속도로, 침묵 속에서 팔을 들어 올렸다. 통과를 허락한다는 신호였다.
주차장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하는 동안, 차 안의 공기가 차갑게 식어갔다. 하나의 명징한 사실이 온몸의 감각을 마비시켰다. 나는 여전히 그분의 이름 뒤에 숨어야만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깊은 바다 밑에 가라앉은 난파선처럼, 나의 신원은 그분의 부재를 통해 비로소 완성되었다. 나는 아직 그 그림자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내 안에는 우울함이라는 끈적한 진흙이 가득 차 있었다. 그 속에서 헤어 나오려 발버둥칠수록 더 깊이 가라앉는 듯 했다. 끝없이 밀려오는 아쉬움은 손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알 같았고, 사무치는 안타까움은 날카로운 칼날처럼 심장을 찔렀다. 무엇보다 목숨줄처럼 붙잡고 있던 그리움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 매번 나를 덮쳤다. 우울함과, 아쉬움, 안타까움과 그리움. 이 모든 감정의 총합이 나의 일부가 되는 것이라면. 상실이라는 상태가 앞으로 내 존재의 기본값이 되는 것이라면. 나는 이제 정말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영원히 이 자리에서, 상실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차단기 앞에서 멈춰 서 있어야 하는 걸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공허한 차 안을 가득 채웠고 차가운 공기 속에서 끝없이 맴돌며 나를 짓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