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수면 아래, 우리 몸에는 더 깊고 원초적인 기억의 지층이 존재한다. 어떤 것은 태어날 때부터 손에 쥐고 있던 재능의 형태로 또 어떤 것은 셀 수 없는 반복의 시간을 지나 마침내 피부처럼 익숙해진 감각의 형태로 새겨진다.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자전거의 페달을 밟는 다리의 기억이나, 악보 없이도 선율을 더듬는 손가락 끝의 미세한 떨림처럼.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알고 행하는 것들. 그것들은 뿌리 깊은 나무의 신경망처럼 우리의 존재 깊숙이 박혀있다. 그곳에는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오직 몸으로만 기억하는 지혜가 숨쉬고 있다.
이런 것들은 언어라는 그물로 건져 올리려 할수록 더 빠르게 속절없이 빠져나간다. 누군가에게 설명하려 애쓰는 순간. ’그저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이라는 당연함은 길을 잃고 나 자신조차 그 앞에서 이방인이 되어 버린다. 마치 숨 쉬는 법을 의식하다 호흡이 엉켜버리는 것처럼, 가장 자연스러웠던 행위 앞에서 모든 게 속수무책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가장 본능적인 움직임조차 언어의 감옥에 갇히는 순간 그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한때는 나의 것이었던 행복과 안정감 같은 감정들도 그러했음을 깨닫는다. 항상 가슴에 온기가 돌고 발걸음 하나하나에 의심이 없던 시절. 그때는 누구도 나에게 행복해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도 굳이 배우려 애쓸 필요가 없었다. 숨 쉬는 공기처럼 당연한 나의 일부였으니까. 아침 햇살이 창문을 넘어 들어오듯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하루를 온기로 가득 채웠던 시절. 심장 박동처럼 규칙적이고 당연했던 감각은, 몸의 가장 깊은 곳에 내재된 리듬처럼 나를 지탱해왔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당연했던 그 감각을 잃어버렸다. 영혼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가슴 속 온기는 사라지고 차가운 공허함만이 남았다. 빈자리에는 시린 바람만이 불어왔다. ’이렇게 하면 다시 기분이 좋아질까‘ 막연한 기대를 안고 홀로 영화관을 찾아가고, 낯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좋아하던 게임에 몰두해도, 이 모든 행위는 텅 빈 무대 위 홀로 연기하는 광대의 몸짓처럼 공허했다. 아무리 화려한 조명이 비추고 웅장한 음악이 흘러도 내 안에는 어떤 감흥도 일지 않았다.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는 우울의 그림자가 끈질기게 붙어있었다. 깊은 습지에 뿌리를 내린 독초처럼 이 그림자는 모든 빛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어떤 외부자극도, 어떤 노력도 역부족이었다. 무엇을 채워 넣어도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나는 끊임없이 허우적거렸지만 출구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일은, 존재하지 않던 근육을 새로 만들어내는 고통스러운 과정과 같은 것일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는 걸까. 이런 어색하고 서툰 행복의 흉내를, 깊은 공허함이 무뎌질 때까지 무수히 반복해야만 하는 걸까. 이 막막함 자체가 내 인생의 익숙한 풍경이 될 때까지 그저 견뎌내는 것밖에는 답이 없는 걸까. 시간이라는 무자비한 폭풍이 모든 감각을 씻어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인가. 황부지에 서서 홀로 비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지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페달을 밟고 있다. 얼마나 더 오래 나는 이 어둠 속에서 페달을 밟아야 하는 걸까. 터널의 끝에 과연 빛이 존재는 하는 걸까. 언제쯤 이 페달을 멈추고 온전히 숨을 쉴 수 있을까.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난 희미하게 존재하는 그림자만을 의지한 채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