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함과 부족함 사이

by 낭만피셔

요즘 글을 쓰는 일이 유독 어렵게 느껴진다. 마치 단어 하나하나에 보이지 않는 무게가 더해진 것처럼, 문장들을 쌓아 올리는 일이 버겁다. 생각은 뭉치지 않고 흩어지며 단어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공을 맴돈다. 책상 위 빈 화면이 거대한 심연처럼 느껴지고 그 앞에서 나는 한없이 작아지는 기분이다.


얼마 전, 예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화면 위로 펼쳐진 문장들은 대부분 짧았고 감정들이 증발해버린 듯 메말라있었다. 그저 건조한 사실들을 늘어놓는 데 그친,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 같은 글들. 공사를 제대로 끝내지 못한 건축물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그 건조함이, 글에 어떤 성의도 없는 것처럼 보여 민망해졌다.


그래서 이제는 의식적으로 글에 살을 붙여보려고 노력한다. 잠자고 있던 단어들을 깨워 문장 속에 배치해보고 짧았던 호흡도 길게 늘여본다. 죽은 언어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는 의식처럼 예전에는 어색하고 민망해서 피했던 화려한 수식어도 이쁜 옷을 입히듯 걸쳐본다. 문장을 치장하면서 상처받은 마음을 감출 수 있기를 바랐다. 슬픔과 공허함을 감싸줄 아름다운 포장지를 찾아서. 하지만 그렇게 치장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이 과하게 부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덧붙인 말들이 오히려 이야기의 본질을 가려버리고 문장 스스로가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주저않는 느낌. 억지로 채워 넣은 것들이 오히려 공허함을 더 크게 만드는 상황. 진실을 감추려 덧댄 천이 너무 많아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는 것처럼, 글이 무거워질수록 그 안에 담긴 진심이 희미해졌다.


그러면 다시, 나는 조각가처럼 깎아내리기 시작한다.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를 덜어내고, 무거워진 문장을 짧게 다듬는다. 쓸모없는 부분을 잘라내어 본질에 다가가려는 듯. 하지만 그렇게 비워내면 이번에는 글이 텅 비어 보인다. 너무 많이 사라져버린 내 마음처럼. 채우고 비워내는 과정을 반복할수록 내 글뿐만 아니라 마음의 조각들마저도 잃어버리는 것 같은 혼란에 빠진다. 글쓰기라는 행위가 나를 치유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를 소진시키기 시작했다. 글은 나의 내면을 투영하는 거울인데, 거울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나는 아직도 과함과 부족함 사이,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 계속 멈춰 서 있는 기분이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균형을 잃을까 봐 두렵고, 그렇다고 멈춰 서 있으면 뒤로 밀려날 것만 같다. 아래로는 아득함 심연이 펼쳐져 있고 위로는 닿을 수 없는 완벽함이 나를 조롱하고 있다. 글이라는 것이, 한 사람의 마음을 담아낸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어렵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유독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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