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입모양

by 낭만피셔

내가 좋아하는 아이의 입모양이 있다.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서 ‘우’ 발음을 할 때의 모양. 매일 아침,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않은 몽롱한 상태에서 나를 붙잡고 "우우" 하며 우유를 달라고 조를 때 통통한 입술. 혹은 반짝이는 촛불을 끄기 위해 혹은 하늘로 둥실 떠오르는 비눗방울을 만들기 위해 힘껏 "후" 하고 바람을 내뱉는 모습. 그 모든 순간 아이의 입모양이 너무 사랑스럽고 귀엽다. 볼이 발갛게 상기된 채 집중하는 작은 얼굴을 보고 있으면 세상의 모든 근심과 불안이 잠시나마 사라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사진들만 따로 모아서 저장해놓고 싶을 정도로. 내 마음을 사로잡는 작은 디테일이자 하루를 버티게 하는 활력소다. 아이의 작고 보드라운 입술이 꼼지락거릴 때마다 잃어버렸던 삶의 따뜻한 온기를 다시 느낀다.


아이의 입은 그분과 정말 많이 닮았다. 신생아 때부터 막연하게 느꼈던 모습이, 아이가 크면 클수록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어제는 아이의 입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정말 엄마랑 입이 똑같다"고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내 말을 알아들었을까. 아이는 "엄마~?" 하고 되묻는 듯한 짧고 천진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바로 다른 놀이를 하러 떠났다. 아이의 작은 세상에는 아직 슬픔과 상실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지 않았다. 그 모습은 내게 위안을 주면서도 동시에 아이가 겪어야 할 미래의 아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걱정을 안긴다.


사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분의 입모양도 바로 ‘우’ 하는 모양이었다. 장난기가 발동할 때면 나는 그분의 볼을 쭉 눌러서 이런 입모양을 억지로 만들었다. 그러면 그녀는 "아, 오빠!" 하고 투덜거리면서도 이내 장난을 받아주며 함께 웃었다. 맑고 청량했던 웃음소리. 함께 웃던 그 순간의 공기까지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 시절의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사소한 장난 속에서 행복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찬란했던가.


아이의 얼굴에서 그분의 얼굴이 보일수록 마음에 꼭꼭 눌러뒀던 그리움들이 조금씩 삐져나온다. 마치 둑이 터지기 직전의 물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미세한 균열을 뚫고 새어 나온다. 꽉 닫아두려 했던 감정의 뚜껑이 조금씩 열리면서 그 안에 갇혀 있던 슬픔과 아픔이 솟아오른다. '그땐 그랬지' 하고 나지막이 생각하면서 과거의 행복했던 순간들을 되짚어본다. 기억 속에서 그녀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나는 기억 속을 헤매는 유령처럼 부유한다.


다시 그분의 사진을 꺼내본다. 핸드폰 화면 속 그녀는 늘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속의 그녀는 결코 변하지 않지만, 사진 밖의 나는 매일 변하고, 매일 더 아파한다. 홀로 남은 내 상황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다시 글을 적는다. 글을 적으면 이런 마음들이 조금은 가라앉을까 싶어서. 나의 고통이 활자 속으로 스며들어 희미해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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