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유난히 맑았던 날 우리는 에버랜드에 갔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나무들 사이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달콤한 솜사탕 냄새가 공중에 가득했다.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거대한 테마파크를 누볐다. 당연하게도 모든 일정과 모든 놀이기구는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좋아하면 같은 놀이기구를 다섯 번, 여섯 번씩 타기도 했다. 작은 몸이 흔들리는 기차를 타고 환호성을 지르거나 회전목마 위에서 마냥 행복하게 웃는 아이의 모습만으로 우리는 충분했다. 사파리월드를 보기 위해 셋이서 세 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 길게 늘어선 줄은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줄을 서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지루할 틈 없이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다음엔 무엇을 할지 설레는 목소리로 계획을 세우고 아이가 생각보다 잘 기다린다며 서로 칭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피곤함보다는 함께하는 즐거움과 온전함이 훨씬 더 컸다.
우리는 저녁까지 시간을 꽉 채워 놀았고 어스름이 깔릴 무렵 마지막으로 여기저기를 돌아보고 있었다. 화려한 조명들이 하나둘 켜지고 낮과는 다른 몽환적인 분위기가 감돌 때였다. 그분이 한 놀이기구를 가리키며 저걸 타보고 싶다고 말했다. "저거 타려면 혼자 줄 서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내가 물었고 그분은 괜찮다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길가 벤치에 앉아 그분을 기다렸다. 그분은 긴 줄의 한쪽 끝에 서서 놀이기구를 기다렸다. 우리의 거리는 10미터도 되지 않았다.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그 순간 그녀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한 기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나와 아이는 손을 흔들고 웃어줬다. 멍하니 줄을 기다리던 그분도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줬다. 언제 탈 수 있을지 목을 길게 빼어 놀이기구의 움직임을 살펴보기도 하고 답답한 듯 핸드폰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아이가 잘 지내는지 수시로 이쪽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분은 그렇게 놀이기구를 기다렸고 나는 그 모습을 그저 바라봤다. 찰나의 순간들은 슬로우모션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그녀의 작고 고요한 움직임 하나하나가 내 시야에 선명하게 박혔다. 그렇게 10분 정도를 기다리던 그분은 마침내 놀이기구에 올랐고 우리는 잠시 후 에버랜드를 떠났다.
2주일 만에 다시 찾은 납골당은 평소보다도 사람이 많았다. 주차장은 가득 찼고, 수많은 조문객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에 가려 유골함을 오래 보기도 쉽지 않았다. 북적북적한 곳은 항상 나의 마음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 와중에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는 건 유리벽 너머 환하게 웃고 있는 그분의 사진이었다. 그 사진은 너무나 선명해서 다른 모든 풍경을 압도했다. 문득 에버랜드에서 그분이 줄을 서서 우리를 바라보던 모습이 떠올랐다. 수많은 사람들 속에 있었지만 단연코 한눈에 들어오던 그분의 모습. 그 순간 그녀는 세상의 모든 소음과 인파 속에서도 오직 우리에게만 집중하는 듯했다. 나를 쳐다보던 따뜻한 표정. 그 눈빛 속에는 나와 아이를 향한 깊은 사랑과 애정이 담겨 있었다. 멀리서 나를 향해 흔들어주던 인사하던 손. 그 손짓 하나하나가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재생된다. 그 짧은 기다림의 순간이, 이제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되었다. 에버랜드의 화려했던 불빛과 아이의 웃음소리,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미소가 자꾸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