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란에 '음악 감상'이라 적는 건 어딘가 민망하다. 지금의 현대인에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 듣는 건 숨 쉬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내 취미를 '새로운 음악 찾기' 소위 '디깅(Digging)'이라 정의하려 한다. 광부가 금을 캐듯이, 두더지가 땅을 파듯이, 스트리밍 사이트의 구석구석을 파헤쳐 새로운 음악을 찾아내는 행위.
고등학교 시절 내 곡괭이가 닿은 곳은 힙합이었다. 에픽하이, 다이나믹 듀오, 그리고 당시엔 언더그라운드라 불리던 아티스트들. 지금은 어디 가서 "힙합 좋아해요"라고 말하기엔 민망하다. 챙겨들은지가 너무 오래됐다. 요즘 래퍼들은 누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플레이리스트는 이미 잡탕이 됐다. 마니아들처럼 힙합의 모든 음악들을 챙겨 듣지는 않지만 씬의 가십은 챙겨 본다. 누가 앨범을 냈는지보다, 누가 누구랑 싸웠는지가 더 흥미진진하다.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다.
얼마 전 래퍼 저스디스의 새 앨범이 화제였다. 가사의 수위가 엄청 높았고 호불호도 심하게 갈렸다. 집에 가는 길에 그 앨범을 듣다가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한국 힙합 사람들은 왜 이렇게 날마다 서로한테 시비를 걸고 싸울까' 발라드 가수가 다른 발라드 가수를 디스하진 않는데.
결론은 간단했다. 힙합은 말이 너무 많다. 앨범 한 장을 내려면 적어도 30분, 길게는 1시간 동안 자신의 얘기를 쏟아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신념도 나오고, 철학도 나오고, 남 욕도 나온다. 문제는 사람 마음이란 게 생각보다 단단하지 않다는 것이다. 살다 보면 가치관이 바뀐다. 새로운 경험을 하면 어제의 정답이 오늘의 오답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래퍼들은 과거에 뱉어둔 수많은 단어들이 족쇄가 된다. "돈보다 예술"이라 외쳤던 과거의 자신이, 쇼미더머니에 나가는 현재의 자신을 비난하는 꼴이다. '노선 바꾼 뱀XX'이 상당히 많다.
남 얘기만은 아니다. 나도 예전엔 내 생각 떠드는 걸 좋아했다. "이게 맞아, 저건 틀려." 확신에 차서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10년 전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이해하지 못했다. "남 연애하는 걸 왜 봐?"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모든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싶어한다.
요즘은 나의 신념이나 가치관을 말하는 게 무섭다. 특히 예민한 주제일수록 더더욱. 생각 없이 뱉은 호언장담이 10년 뒤 나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될까 봐 겁이 난다. 과거의 나와 싸우고 싶지 않다. 어쩌면 나이가 든다는 건, 할 말이 줄어들고 점점 세상의 '중간지대'로 숨어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