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피셔 Dec 19. 2018

필름 카메라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 - 랜덤의 미학

"현실엔 기쁨과 슬픔이 공존해. 당연히 영화도 그래야 해"

 내가 코엔 형제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의 영화 속 인물이 느끼는 '당혹감' 때문이다. 예상하지 못한 사고들에 난처해하고 당황하는 사람들을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떠올린다. 세상의 모든 일들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지만, 우리가 모든 원인들을 알 수는 없다. 갑자기 뒤통수를 맞고 황당한 사건들을 겪으며 "대체 나한테 왜 이래?" 원망한 적 모두 있겟지. 만약 저 위에서 이곳을 내려다보는 누군가가 있다면 모두 알고 있겠지만, 우린 이곳에서 한 곳만 보며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아무것도 모른 채 다가오는 폭풍을 맞아야 한다. 어쩔 수 없다면 즐기자.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서 랜덤(Random)을 즐기자. 매일 세상이란 거대한 박스에서 결과라는 무제한의 제비 중 한 장을 뽑는 것이다.


7년 동안 사진을 찍으며 필름 카메라만 사용한 건 아니었다. 필름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잠시 DSLR로 눈을 돌리기도 했다. 확실히 DSLR은 편했다. 필름 걱정 없이 마음껏 찍을 수 있었고, 어떻게 사진이 나올지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심지어 무게도 가벼웠다.

하지만, 결국 내가 필름 카메라로 돌아온 건 '랜덤(Random)' 때문이었다. 필름 카메라는 제비뽑기 같은 장난감이었다. 카메라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았고 할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나에게 필름 카메라는 설레임과 걱정이었다. 이렇게 찍었는데 저렇게 나오거나, 저렇게 찍었는데 이렇게 나오거나. 아니면 전혀 예상치 못하게 필름이 안 감겼거나.


'어린 왕자' 속 여우는 말했다.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나도 그랬다. 필름 속 사진을 금요일에 받는다면 난 필름을 구입한 월요일부터 행복해졌다.


Written By. 낭만피셔
Photo By. 낭만피셔
Instagram : @romanticpisher
매거진의 이전글 Simple Is Bes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