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서 독박육아하기
‘나중에 너 닮은 딸 꼭 낳아, 내 맘 조금이라도 알려면..’
엄마 마음 알고싶지 않았던 건 아닌데 본의아니게 나는 두살터울 아들형제만 낳았고
어느새 ‘누굴 닮았겠니? 애비,에미 닮았겠지’ 로 레파토리는 바뀌었다.
그래, 우리 새끼 나 또는 남편 닮았겠지..
티비 속에 나오는 아가들은 어쩜 그렇게 한결같이 인형같기만 한지 큰 눈만 꿈벅꿈벅, 방실방실 잘도 웃고 정말 천사가 따로 없건만,
물론 우리집에도 천사가 있긴 한데 그야말로 ‘잘 때만 천사!’
문제는 그 ‘잘 때’ 가 쉽지 않다는 거다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래도 쉽지 않았던 첫 째 아이를 8년만에 정말로 간절함의 끝판 기도로써 얻게되면서 어찌 귀하지않고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첫 아이, 나 또한 엄마가 처음이었기에 모든게 실수 투성이 낯선 것 투성이었지만 흔한 조리원 하나 없이 주변에 도움받을 곳 전혀 없이 오직 남편과 나 둘이서만 아이를 케어해왔고 모든 아이들이 다 그런 줄만 알았었다.
그러다 어느날 알게되었지.
모든 아이가 이렇게 일명 ‘진상’ 은 아니라는 것을..
두살터울로 둘째가 생겼고 태교로 오직 단 하나만 바랐다.
‘순한 아이로 부탁합니다’
예정일 한 주 앞에 태어난 둘째는 입원 이틀동안 신생아 병동에서 목소리가 가장 작은 아이였다.
옆방, 앞방에서 큰소리로 울어제낄때도 전혀 동요없이 순둥이처럼 새끈새끈 잠도 잘 자고 오직 열달동안 기도했던 내 바램대로 세상 순한 아이가 태어났다고 철썩같이 믿었었다.
이탈리아는 100% 모자동실이 기본, 출산 3시간 후쯤 아이는 병실 내 옆으로 오고 함께 이틀 병원생활 후 당연히 조리원도 없기에 집으로 오게 된다.
몸조리가 어딨어!
이미 낳자말자 본격 육아는 시작인 셈이다.
먹고 자고 세상 순둥이 같기만 하던 녀석은 50일쯤되니 서서히 본모습을 드러내며 등이 바닥에 닿으면 절.대. 안되는 병에 걸렸다.
2살터울 아니 정확하게 23개월 차이 나는 첫째 또한 있다보니 그야말로 대환장
(언제나 그랬듯 남편은 이런 대목에선 늘 바쁘다)
철저한 독 To the 박 육아
도저히 안되겠어서 첫째를 어린이집이라도 보내려하니, 둘째 출산은 정수리가 녹을 것처럼 뜨거웠던 이탈리아의 한여름 7월 말에 했고 이탈리아 학기는 9월이 새학기이니 어린이집을 보내려면 뼈마디도 제대로 맞춰지지 않았을 내가 100일도 안된 갓난쟁이와 두살의 (어디로 튈지 전혀 알 수 없는) 시한폭탄과 함께 아침부터 씻기고 입히고 차 태워서 데려다주고 데리고오고.. (유치원 버스 따위 없음) 해야한다는 결론에 당도하고 나니 어후 그게 더 스트레스 인거다
24시간이 부족해 48시간을 원하는 게 아니라 몸땡이 하나가 부족해 두개? 아니 세개쯤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절
애 둘이 잠만 좀 (낮잠, 밤잠) 잘 자줘도 그사이 나도 좀 쉬면서 체력충전도 하고.. 오죽 좋았을까 싶지만
잠투정이 엄청난거다. 심지어 두 녀석 모두
세살 버릇 여든 간다던 옛말은 이제와 보니 틀린 것 같다.
세살 버릇 아닌 뱃속에서 나오자말자 버릇이 죽을 때까지 가는 것같다.
등이 땅에 붙으면 절.대 안되는 병에 걸렸던 둘째는 15개월 된 현재 약간의 호전세를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투병 중임에 틀림없다
등만 닿으면 안되는 게 아니라 잠이 쏟아져 미칠 것만 같은데 대체 뭣때문에! 눈을 부릅뜨는지!
그 깊은 뜻을 알 길도 없지만 낮이고 밤이고 잠 들기
위해 최소 두시간의 노고가 필요한거다 매.일.을.
버릇을 고쳐보려 이래도 보고 저래도 봤지만 결국 제자리
매일이 너무나 지쳐 잠 자야할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내가 다 두려울 지경이다
종종 아이들을 재우는 남편이야 허구헌날 내 투정을 듣긴 했지만 막상 닥치면 입이 떡하니 벌어지면서도 하루 이틀은 남의 집 애도 재울 판에 할 수 있지.. 매일 하는 내가 돌아버리겠는거지..
여느날처럼
초저녁부터 졸린 둘째는 징징모드에 이미 돌입했고 자 지금부터 두시간 스타트!
예상을 깨고 세시간이 지나감에도 실랑이의 끝이 보이지 않아 극도로 스트레스가 쌓여 터지기 직전인데 남편이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애가 대체 왜 이런거야?’
알고보면 별 뜻 없이 내뱉었을 수 있을텐데 나는 더 참지 못하고 터져버렸다.
“아 몰라! 왜 맨날 나만 이래야 해!”
빽 소리 치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다.
심지어 두어시간 후면 밤10시 통행금지 또한 발효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탈리아 로마는 현재 밤10시 통행금지가 있다)
초라한, 헛헛한 마음보다 홧김에 박차고 나온 현관 밖 테라스의 예상치못한 찬 바람을 쐬니 순간 터졌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의자에 앉아 밤하늘을 올려다 본다
내일부터 비가 온다더니 젠장 이런 날은 별하나가 안보인다.
얇은 실내복 차림으로 이내 추워져 현관문을 살짝 열고 살금살금 안으로 들어가 담요 한 장과 맥주 한 병을 챙겨 아이들 트램폴린 속에 들어가 누웠다
이럴려고 큰 사이즈를 구입한 건 아니었는데
해가 뉘엿뉘엿하던 여름에 꽤나 누웠었다
적당히 살랑이는 바람과 지겹지 않던 하늘
트램폴린은 아이들의 최고의 놀잇감이자 내게도 아지트같은 공간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다시금 살짝 들어가 이어폰도 가지고 나왔다
비가 온다더니 습기를 잔뜩 머금은 찬 공기가 서늘하지만 꽤 나쁘지 않다
담요로 온몸을 칭칭 둘러싸고 머리가 아파올 만큼 차가운 맥주를 쭈욱 들이키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겨울의 밤, 아니 나 혼자만의 시간
거창한 걸 바란 게 아니라
단 몇시간이라도 그 누구의 방해 받지 않는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른다
맥주 한 병을 더 할까?
내친김에 노트북도 가져와 영화 한 편을 볼까?
고민하다가
뭘 망설여, 둘 다 하면되지
노트북도 맥주도 담요도 한 장 더 챙겨서 나오지 뭐
혹 여기서 잠들면 입 돌아가진 않겠지...
애들은 잘 자려나..
고작 현관문 밖 테라스에 있으면서도 벼라별 걱정을 다 하는 정작 내가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