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돈, 권력, 명예)
봄 햇볕 좋은 주말에 오랜만에 운전을 하고 백화점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오래전 밀라노 출장 갔을 때 리나쉔테 백화점에서 발견한 알레시 머그컵을 사 와서 벌써 이십 년 가까이 써왔다. 그런데 얼마 전 스텐 머그컵 안에 끼워서 쓰는 유리컵을 부주의로 깨트렸기 때문이다. 주문한 지 세 달 만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찾으러 가는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가까운 양재동 꽃상가에 들러 요즘 반려식물의 트렌드인 구아바 나무와 황칠나무를 한 그루씩 사 왔다.
꽃가게를 둘러보던 중 정말 수형이 마음에 쏙 드는 구아바 나무와 황칠나무를 발견하고 구매를 하고는 차에 싣기 위해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를 그 가게 가까운 입구로 대기 위해 차로 갔다. 조금 전 주차 때 옆에 세워놓은 랜지로버 운전자가 꽃나무를 사들고 뒷자리 문을 열고 나무를 싣고 있었다.
그때 아내가 그 차의 뒷문이 내 차에 부딪힌 것 같다며 주의를 주었지만 나무를 싣느라 바쁜듯해 보이는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여성분께 민폐인 것 같아 문콕을 의심하면서도 확인을 하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 접촉이 있었던 뒷문을 살펴보니 그 차의 하얀 자동차 페인트가 내차에 묻어있을 정도로 깊게 파여 묻어있었다.
그 정도면 문콕을 했을 때 그 여성분은 충분히 알았을 텐데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꽃나무를 싣는척하며 뒷자리에 머리를 집어넣고 연기를 했던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 아내와 거실에 화분을 배치하고 그 문콕 사건을 리뷰했다. 아내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연기하고 도망간 그 여자분이 지금 행복해할까 의구심을 가졌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그분은 그 위기의 순간을 자신의 연기와 재치로 모면했다고 생각하면서 너무 행복해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떤 일을 마주할 때 늘 끝에 가닿는 생각은 “값나가게 살진 못해도 최소한 후지게 살진 말자”라는 생각이 앞선다.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 내가 하는 모든 일, 내가 맺고 있는 모든 인간관계에서 늘 그런 생각이 마지막에 가닿는 생각이다. 최근에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LH 부동산 투기 문제를 바라보면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특히 그 불법투기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든 가족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살아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누구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생각을 폄하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최소의 경제 주체인 가정을 건사하고 생계에서 만큼은 가족을 잘 부양하는 일은 가장 소중하고 숭고한 일이기 때문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그 가장 기초적인 문제, 스스로와 가족의 생계를 해결하지 않는 한 어떠한 사회적인 선한 영향력의 행위일지라도 어쩌면 위선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숭고한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가질 만큼 가졌으면 어느 순간 스스로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모든 문제는 그 멈출 줄 모르는 끝없는 탐욕에서 발생한다. 잘 먹고 잘살아보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일이 스스로 목숨을 버릴 만큼 불법하거나 불의한 일인 줄 알면서도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하고 아쉬울 뿐이다.
인간의 탐욕은 돈, 권력, 명예의 세 가지로 크게 분류할 수 있다. 우리가 치열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동기 부여하는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세 가지를 축으로 해서 우리의 삶이 동기부여를 받지만,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에서 이룩한 훌륭한 성과에서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더불어 또 다른 하나나 둘에 욕심을 부리는 순간 그 욕망을 떠받치고 있는 세 가지 축이 서로 함께해서 하나나 둘로 서게 되면 그만큼 우리들의 존재 자체가 불안정해지고 외부의 위협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삶의 이치이다.
지금도 주변을 둘러보면 돈이 많은 사람은 권력이나 명예를 더 갖고 싶고, 권력을 가진 사람은 그 권력을 이용해서 돈이나 명예도 갖고 싶고, 사회적인 명예를 충분히 가진 사람이 돈과 권력을 더 가지려 하다가 소중히 일궈온 그의 삶이 지나친 탐욕과 거짓으로 한순간에 추락하는 모습을 무수히 많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일까.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지나친 탐욕을 멈추지 않는다면 결국은 우리 자신을 세상에서 소멸하게 만들 것이다. 무엇이든 가질 만큼 가졌으면 스스로 멈출 줄도 알아야 한다. 문득 노자께서 말씀하신 “하늘의 그물이 엉성해도 악인은 결코 그 그물을 빠져나갈 수 없다. 하늘이 그에게 벌주는 일 만큼은 빠트리지 않는다"라는 말씀이 생각난다. 오 년 전, 십 년 전 자신의 업무에서 취득한 내부 정보를 이용해서 불법 부동산 투기로 인한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희희낙락 살아왔겠지만 LH 사태로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금, 잠 못 드는 그분들을 생각하면 노자께서 괜히 하신 말씀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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