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여행
지난해 12월 중순, 겨울 여행을 하면서 동해안 속초 주변을 드라이브 겸 산책을 했다. 하루 종일 운전하고 걸어 다닌 덕분인지 숙소에 돌아오니 온 몸의 긴장이 풀어졌다. 간단히 저녁을 먹기 전에, 겨울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쓸쓸한 느낌의 철 지난 바닷가를 산책했다.
코로나 사태 때문인지 바닷가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거리에는 손님은 없고 가게에 불만 훤히 밝힌 식당들이 살을 에는 듯한 바닷바람과 함께 유난히 더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숙소 레스토랑에서 아내는 해물 뚝배기를 시켜먹고 나는 튀김우동을 주문했다. 일식집도 아닌데 왜 굳이 지역 특별 음식을 시키지 않고 우동을 시켜먹느냐고 핀잔을 준다. 그래도 꿋꿋하게 튀김우동을 시켜 먹고는 맛이 없어서 금세 후회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골프 칠 때 캐디 말, 운전할 땐 네비의 김양 말, 일상생활에서는 아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기본을 무시한 탓이다. 낙산사 절집 앞에서 호떡을 하나 사 먹어서 그런지 배가 고프지 않아 가볍게 먹고 싶어 그렇다고 제대로 소통하지 못한 내 잘못이다.
저녁을 먹고 올라와서 룸에 비치해놓은 커피를 끓여 마시고는 창밖으로 보이는 드넓은 동해의 밤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밀려오는 파도가 하얗게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걸 보면서 한참 물멍을 했다. 불멍처럼 물멍 또한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하얀 포말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쳐다보게 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바닷가 숙소라 마운틴뷰보다는 몇만 원 비싸더라도 오션뷰를 택하길 잘했다는 것을 물멍도 좋았지만 아내의 칭찬을 받고 더 보람이 있었다. 아내는 미리 알고 준비했느냐고 물었지만, 사실 숙박 앱에서 오션뷰만 지정했을 뿐 이렇게 눈에 넘치게 탁 트인 동해 바다가 보일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른 저녁을 먹은 후 하루 종일 걸어 다닌 탓인지 얼마 뒤 아내는 말도 없이 스르르 먼저 잠이 들었다. 혼자서 미리 챙겨 간 신간 소설을 읽을까, 음악을 들으며 TV 프로그램 ‘로망대로 살아볼까’를 볼까 하다 후자를 택했다. 늦은 밤이라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미리 새해맞이 일출을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매년 섣달 그믐날은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잠들면 새해 첫날은 늘 늦잠을 자기도 했지만, 타고난 선비적인 게으름 탓에 동해바다의 멋진 새해 일출을 보러 갈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새해 첫날이라 생각하고 호텔 룸에서 일출을 챙겨 보려고 계획 했다.
잠든 아내를 배려해 소리를 제거해 놓은 TV를 보면서 유튜브 화면에 알고리즘을 통해 제안된 불후의 명곡, 가수 에일리의 “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발견하고는 무선 이어폰을 끼고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뻔했다.
일생 생활에서 이탈해서인지, 아니면 나이 들어 여성호르몬이 분비된 탓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속세를 떠나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낯선 곳에서 밤바다를 보고 감성이 충만해진 탓이라고 여겼다. 아니, 가수 에일리가 노래를 너무 잘 불렀다.
사람과의 관계 맺기 또한 서로 그 관계마저도 아무런 이해관계가 개입하지 않으면 더욱 순수해지고 인간 본성의 선함이 살아난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없는 모임에서 조차도 어떤 한두 사람이 이해를 목적으로 하면 그 모임은 서서히 깨지고 만다.
사실 단톡 방의 가장 편리한 기능은 두 명 이상이 약속을 잡을 때가 가장 유용하다. 우리 인간이 느끼는 감정도 복잡한 현실을 멀리하거나 아니면 바쁜 일상을 떠나서 나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곳, 그냥 좋은 풍경과 조금은 익숙하고 조금은 낯선 곳에 와도 그 느낌은 또 다른 느낌일 수밖에 없다.
아마도 그래서 일상을 떠나거나 새로운 곳에서 어떤 토론을 하거나, 일을 하게 되면 창의적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매일 똑같은 것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꿈꾸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는 아인슈타인의 조언처럼, 가끔은 새로운 경험과 낯선 장소에서 머물 필요가 있다.
파올로 코엘료
평소에 서울에서 들을 땐 에일리의 그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 그처럼 세상과 나와의 관계도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을 때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질 수 있고, 가면을 쓰지 않은 온전한 자기 자신과 마주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온전한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거나, 또는 자기 스스로와 오롯이 홀로 있지 못한다면 그 어느 누구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 허전함과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