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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내고 망설이다 놓치고 나면 후회하는 것들

옥수수를 거두어들이는 달

by 봄날


큰 태풍이 벌써 두 개나 지나가고 다시 또 다른 태풍이 동해상으로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지난여름은 질풍노도와 같이 지나갔다. 초여름에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으며 8.15 광복절 광화문 집회를 계기로 코로나가 재 확산해서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고, 역대급 태풍이 또 지나간다고 재난방송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재확산의 엄중한 와중에서 의사협회의 파업도 있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지난여름은 이래저래 우리들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이젠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태풍 같은 파업도 지나고 또 다른 태풍 하이선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며칠 반짝 더웠던 무더위도 지나고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가워진 가을, 9월이 되었다. 유월초에 인디언들은 유월을 ‘옥수수수염이 나는 달’(위네바고족)이라고 부른다 했는데 이제 그들의 언어로 벌써 ‘옥수수를 거두어들이는 달’(테와 푸에블로족)이 되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갔던 지혜로운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일 년 열두 달을 불렀던 그들 각 부족들의 언어로 새로운 달이 시작되면 이번 달은 또 어떻게 불렀을까 다시 한번 찾아보곤 하는 버릇이 생겼다.




검정 나비의 달 / 체로키 족
사슴이 땅을 파는 달 / 오마하 족
풀이 마르는 달 / 수우 족
작은 밤나무의 달 / 크리크 족
옥수수를 거두어들이는 달 / 테와 푸에블로 족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각 부족별로 다르게 불렀던 9월의 이름이란다. 자연과 함께 생활하고 자연 속에서 함께 살아갔던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배우는 지혜는 끝이 없을 정도로 많다.


어느 인디언 부족은 성년을 맞이한 소년, 소녀들의 성인식을 옥수수밭에서 치렀다고 한다. 성인식에 참가하는 소년, 소녀들을 옥수수를 거두어들이는 이맘때쯤 옥수수밭의 각각의 긴 고랑 앞에 한 줄로 세워놓고 그 각자의 고랑에서 제일 크고 좋은 옥수수를 해가 지기 전에 따오는 것으로 성인식 행사를 치렀다. 그런데 이 행사에는 한 가지 규칙이 있었다고 한다. 한번 지나친 옥수수나무는 다시 돌아볼 수 없고, 오로지 앞만 보고 가다가 마음에 드는 큰 옥수수 하나만을 따야 하는 것이었다. 일단 한 번 땄으면 앞으로 가는 도중에 더 큰 좋은 옥수수를 발견한다고 해도 다시 딸 수는 없는 행사의 규칙이 있었다. 해가 기울고 성인식이 끝나면 각자의 고랑 끝에서 옥수수를 들고 나온 소년, 소녀들은 대부분 작고 초라한 옥수수를 들고 나와 한숨지었다고 한다.



눈치챘겠지만 잘 익고 좋은 옥수수를 보아도 또 더 큰 옥수수를 찾기 위해 정신없이 앞으로 계속 나아가다 보니 고랑의 끝에 이르러서야 지나온 그 좋은 옥수수를 놓친 것을 후회했지만 규칙상 되돌아 갈 수없었다. 옥수수 밭고랑 끝에 이르러서야 큰 후회와 함께 그나마 마지막 옥수수나무에서 선택의 여지없이 그냥 그렇고 그런 작은 옥수수를 따올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어느 인디언 부족의 성인식 얘기이지만 그 부족의 어른들이 성인이 되는 통과의례인 옥수수 따기 성인식에서 부족의 소년, 소녀들에게 주고자 했던 삶의 규칙과 교훈이 있었을 것이다. 해가 질 때까지 옥수수 밭고랑에서 좋은 옥수수를 발견하고 그 옥수수를 딸까 말까, 아니면 더 좋은 옥수수를 찾아 앞으로 고랑을 더 걸어가야 할까를 고민하고 망설이면서 그렇게 통과의례를 거쳐야 했을 그 인디언 소년, 소녀들을 상상해 본다.



성인식의 통과의례를 거치면서 그 부족의 인디언 소년, 소녀들이 옥수수 밭고랑의 뙤약볕 아래에서 처음 발견한 크고 좋은 옥수수를 따야 할지 아니면 더 크고 좋은 옥수수를 찾아 나아가야 할지를 두고 고민했던 그 순간과 선택의 결과는 평생을 두고 그들에게 큰 교훈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좋은 옥수수를 만나고도 더 큰 옥수수를 찾기 위해 욕심냈던 그 순간, 좋은 옥수수를 놓치고 지나온 밭고랑을 뒤돌아가고 싶었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후회 막급했던 그 순간, 그리고 이제 스스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 작고 초라한 옥수수를 가지고 마지막 옥수수 밭고랑을 나섰을 때의 그 순간들을 기억하면서 자연과 함께 지혜로운 일생을 살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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