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말아요, 파리는 어디 안 가요.
찜통 같은 무더위가 한 달째 계속되던 어느 주말, 갑자기 천둥 번개가 치고 소나기가 내렸다. 그 빗속을 뚫고 운전을 하다 구청 앞 뜰에 붉게 타오르는 듯한 나무 백일홍을 보았다. 매년 여름이 되면 무더위가 제대로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배롱나무꽃이다. 하지만 이제 곧 여름은 가고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과 함께 가을이 올 것 같다.
코로나로 인해 해외를 못 나가 본지 꽤 오래되어서인지 TV를 볼 때면 요즘은 나도 모르게 여행 프로그램에 채널이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읽고 있는 책도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민음사)이다. 단편들을 배스킨라빈스 버라이어티팩을 사놓고 더울 때마다 매일 하나씩 꺼내 먹듯 읽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열대야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밤에 하릴없이 TV 리모컨을 재핑 하다 우연히 보게 된 로드 무비 ‘파리로 가는 길(2017, 엘레노어 코폴라 감독)을 보고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 지방의 매력에 빠져들기도 하고, 다시 그녀, 다이안 래인이 주연한 ‘투스카니의 태양(2004, 오드리 웰스 감독)을 집 밑 카페에 내려가 보면서 달콤 쌉싸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남부 이태리의 풍경에 매료되기도 했다.
누군가 “다른 곳을 그리워하지 않을 때가 행복이다”라고 했던 말이 생각난다. 지금 내가 땅을 밟고 살아가고 있는 이곳이 아닌, 어떤 다른 곳을 그리워한다면 지금 나는 행복한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그렇게 말했던 사람의 그리움이란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곳, 또는 누군가와 함께 했던 기억이 머무는 곳을 그리워하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는 그리움을 말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아무렴 어떤가, 코로나 사태로 매일매일 뉴스특보를 주시하면서 살아가는 요즘처럼, 모임이나 이동에 제한이 생기고부터 코로나 이전의 일상으로의 복귀는 기약이 없고 또한 해외여행 제한은 모두 우리의 삶을 구속하고 있다. 언제나 살아가는 일에 매번 홍역을 치르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누가 직접적으로 우리의 삶을 구속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온전한 일상을 박탈당하고, 또한 스스로 이동제한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구속에서 얻은 게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찾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처음 겪어보는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우리에게 긍정적인 변화, 즉 평범한 일상에 대한 소중함과 역경을 함께 극복해가는 이웃에 대한 감사함을 얻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