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늘 정당한 이유로 그릇된 일을 저지른다

Battle Grounds

by 봄날


지난 1월에 읽었던 책 ‘폭격기의 달이 뜨면’에 이어 다시 7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책, ‘배틀 그라운드’를 구매해서 읽기 시작했다. 세계시민으로서 어느 트위터리안이 추천한 책, ‘폭격기의 달이 뜨면’을 읽고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과 그 주변 인물들이 겪었던 전쟁의 생생한 기록과 함께 지금 자유세계를 이끌고 있는 두 축인 미국과 EU, 즉 서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한 목적도 있었다.


실제 그 책을 읽고 80년 전에 벌어진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파시스트 히틀러에 대항해 함께 싸웠던 러시아를 포함해 그들의 생각과 전략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영국인들이 전쟁을 겪으면서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드러난 그들의 정신과 의식 수준에 대해 많이 우러러보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선진국의 시민의식에 대해 매우 부럽기도 했으며 그들이 폭넓게 이해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치체재로서 참혹한 내전의 폐허 속에서도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내고 미국과 서방이 찬미해마지 않는 민주주의를 꽃피운 한편, 괄목할 경제성장을 이룬 세계의 롤모델로서 그들이 동유럽, 남미,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등에서 민주주의 정치체재의 우수함을 선전하는데 활용하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렇게 불행한 과거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나라를 목표로 우리는 경제 10 대국에 진입할 때까지 우리의 불행한 과거를 잊지 않았으며, 이제 그 결실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우리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있다. 또한 일제 식민지배 이후 우리나라가 가지게 된 대부분의 열등감을 주입했던 이웃 일본을 제치고 G5에 들어가기 위해 마지막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만큼 지금 우리의 정치, 외교 현실은 다시 한번 더 재도약할 수 있느냐, 아니면 여기서 만족하고 우리가 거둔 결실과 함께 새롭게 등장한 신냉전시대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켜보며 21세기 제국주의 부활의 신호탄을 못 본척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경제발전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고생한 대가를 누리며 그냥 우물 안 개구리로 안온하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중대한 의사결정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고 냉전 체재가 무너지면서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유럽의 국가들까지 NATO에 가입했다. 그리고 초강대국으로서의 자신감을 장착했던 미국은 2001년 불의의 9.11 테러를 당하고 난 후 2003년, 대량살상 무기 제거를 명분으로 아랍의 파시스트 후세인의 이라크를 단죄하기 위해 나섰다.


예의 그 서방의 동맹들과 함께 초강대국 미국이 최강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를 전자오락 게임하듯이 전 세계가 CNN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그 전쟁의 생중계를 지켜보게 함으로써, 더 이상 초강대국 미국과의 재래식 무기를 통한 전쟁은 필패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아들 부시 대통령이 전투기를 몰고 미국 함공모함에 직접 내리는 장면으로 장식했다.


소금산 울렁다리와 잔도길


하지만, 그때 이후로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나라 초강대국 미국을 만들고 난 후 20년 가까이 여야 단합된 정치와 경제적 부를 누리면서 세계 경찰국가로서의 역할을 대신해 왔다. 자유 세계의 보편적 가치와 그들의 이익에 반대하는 나라들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제재 조치로 그들이 이룬 막강한 부를 활용하며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미국은 그들이 향유하고 있는 국익이 인류애적인 보편적 가치를 뛰어넘어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을 포함 국익에 도움이 되지 못한 나라에서는 발을 빼고 있다.



그동안에도 세계의 정치 지형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며 많은 변화가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한 나라의 무력에 의한 국경선을 넘는 침공이 러시아에 의해 2008년 유럽의 평화로운 조지아에서 일어났다. 그 조지아 침공에서 미국과 서방의 간을 본 러시아 푸틴은 2014년, 지금처럼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누구도 원치 않는 평화유지군으로서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를 침공하고 러시아에 합병한 후 꿈에 그리던 얼지 않는 부동항, 세바스토폴 항구를 얻었다.



한편, 이미 오랫동안 직접적 상대의 전쟁이 없는 안일한 평화와 경제적 부를 누리기에 바빴던 미국과 서방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 무력침공으로 국경을 무너뜨린 러시아의 침공을 보고도 양손에 든 것을 놓칠세라 러시아 푸틴이 예상한 대로 직접 군사적 개입을 하지 않고, 실효성 없는 경제제재로 명분을 찾고 푸틴에게 다음 행동의 용기를 주고 말았다


미국은 이제 그들이 앞선 두 번의 조지아, 크림반도의 침공을 통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제공한 푸틴이, 지정학적인 처지를 무시하고 72%의 압도적 지지로 정권을 잡고도 실정으로 22%까지 폭락한 지지율도 만회할 겸 NATO 가입을 공공연하게 외친 우크라이나를 다시 침공하는 사태를 목격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미국이 적잖게 당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전열을 가다듬고 동맹국들과 함께 연대해 경제제재의 핵폭탄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참혹한 전쟁터는 미국 본토가 아닌 우크라이나이고, 이제부터의 시간은 미국 편이다. 2008년 조지아 침공 때처럼 속전속결의 목표 달성을 노렸지만, 매번 당하기만 했던 우크라이나의 저항정신이 살아나면서 오히려 러시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고 설사 키예프를 점령한다고 해도 수렁에 빠질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



신냉전 시대의 한 축인 미국과 서방 모두 크림반도 사태에서 러시아 푸틴에게 용기를 준 그들 스스로를 잊고, 예상치 못한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을 당하고 나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이번에야말로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과 함께 제대로 된 경제제재를 취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번 침략 전쟁에서 가혹한 경제 제재로 인해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특히 잠자던 유럽의 최강, 독일을 다시 흔들어 깨우는 실수를 저질렀으며, 트럼프의 비용분담 강요로 지리멸렬하던 나토를 다시 재무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푸틴은 러시아내의 반전시위처럼 아무 죄 없는 러시아 보통사람들의 혹독한 시련을 통한 분노가 폭발할 때쯤이면 후회막급이 될 것이다.



중국 또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무력 침공에서 교훈을 얻고, 당분간 미국과의 맞대결보다는 훗날을 위해 도광양회, 발톱을 숨기고 오바마의 인권 문제와 트럼프의 무역전쟁에 머리를 숙이고 인내하면서 버터 왔지만, 지금은 러시아와 함께 또 한 축을 이루면서 유럽과 아시아에서 두 개의 전쟁을 미국이 수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할 수 없어 대만을 호시탐탐 지켜보며 우크라이나 사태를 관망하고 있다. 편을 들고 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독일과 나토를 재무장하게 한 결과, 몇 년 후면 미국이 아시아의 중국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하지만, 내부적으로 시진핑의 3기 집권을 목표로 2022년 동계 올림픽을 활용한 중화 민족주의를 이용하며 ‘중국의 꿈’을 달성하기 위해, 발톱을 숨기고 뒤에서 조용히 힘을 기른다던 도광양회 전략을 미국에 너무 빨리 노출한 게 아닌가 후회하고 있지만, 이제 그들의 발톱을 보인 이상 러시아와의 연대를 더욱 강화하게 될 것이다.


또한 G2 중국의 막강한 경제력을 가지고 서방을 컨트롤하며 한편으로는 피를 나눈 혈맹, 북한의 핵을 이용해서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일본, 한국을 견제하고 절묘하게 미국과 한국의 두 줄타기로 상황을 관리하며 그 때를 노리고 있는 형편이다.



지금까지 나열한 세계사적인 지구촌의 형편을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는 매우 치밀하게 밀당의 두뇌 플레이가 필요한 중차대한 신냉전 시대 두 축의 지정학적인 군사, 경제, 외교의 각축장에 서있다. 1994년 북한의 영변 핵위기 때처럼, 미국 본토에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날릴 수 있는 레드라인을 넘을 경우 미국의 선제타격 옵션도 두려운데, 또 한국의 정치인의 입에서도 선제타격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선제타격을 해서도 안 되겠지만, 북한이 바보가 아닌 이상 미리 말하고 하는 선제타격 옵션은 이제 아무 소용이 없어졌다.


어제 발생한 울진, 삼척의 봄철 대형산불 하나도 국가위기경보를 발령할 만큼 끄기 힘든데, 하물며 북한이 여기저기 지하갱도에 흩어놓은 수백 개의 핵무기를 일거에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없거니와, 그중 한 개라도 우리에게 떨어지는 날에는 좁은 땅에서 기존 원자력 발전소의 피해와 더불어 남북한 모두 방사능과 낙진으로 재생이 어렵고 함께 살아갈 수가 없다. 북한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선제타격을 당하지 않는 이상 한반도에서 공멸의 핵무기를 쓸 이유가 없다.



한반도가 우크라이나와 똑같은 지정학적인 위치에서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서방, 중국과 러시아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두 강대국 진영 간의 대리 전쟁터가 되어 영문도 모르고 죽을 수는 없기에 미국 보수 정권, 트럼프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을 지낸 맥매스터의 ‘배틀 그라운드’를 읽으며 삼십 년 넘게 전쟁터를 누빈 그의 생생한 현장 경험과 신냉전시대의 양대 축을 이해해보고자 한다.


어차피 일본과 중국,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인 우리는 피난 갈 곳도 없고, 죽는 것도 두렵지만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다른 나라도 아니고, 같은 민족끼리 명분 없는 주변 강대국들의 대리전쟁에 나가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다.


소금산 출렁다리


절대 그래서는 안 되겠지만, 이제 러시아에 의해 한번 무너진 국제 질서 속에서, 오고 가는 말폭탄 끝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혜택을 보게 될 세력은 일본이다. 1950년 한국전쟁을 이용해 태평양 전쟁의 폐허를 재건하고 도쿄올림픽을 치르며 일본의 부활을 세계만방에 알렸던 것처럼, 그동안의 20년 넘게 이어온 경기침체를 딛고 일어설 호재로 작용해서 다시 한번 우리나라를 넘보게 될 일본을 생각하면 ‘배틀 그라운드’ 한국판 출시를 앞두고 일 년 전 저자 맥매스터가 쓴 서문도 채 못다 읽고 책장을 덮은 채 상념에 사로잡히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