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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Aug 05. 2022

내 안에 없는 것은 밖에서도 채워지지 않는다

결핍


 장마철의 어느 주말, “견딜 수 없이 촌스런 삼 남매의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운 행복 소생기”라는 ‘나의 해방 일지’, 추앙에서 시작해 환대로 끝나는 그 드라마를 자발적 폐인이 되어 보았다.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SNS에서 많이들 추천했기 때문이었다.


 서울의 노른자위가 아닌 근교의 흰자위에 살고 있는 삼 남매는 이런저런 이유로 각자만의 결핍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돈, 가족, 애정, 외모 등등 각자 크고 작은 결핍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영화 ‘중경삼림’(1994, 왕가위 감독)에서 이별을 통보한 애인을 잊기 위해 금성무가 먹던 유통기한 지난 델몬트 파인애플 통조림이 생각난다. 어릴 때 시골이었지만 나름 귀하게 자란 나는 지금도 가끔씩 복숭아 통조림을 먹는다. 그때 시골에서 귀한 음식은 복숭아 간소메(통조림이란 일본어), 카스텔라빵이었다.

 

 지금은 그것들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넘쳐나지만 그때는 그랬다. 아제, 아지매가 기억나는 가정형편이었지만 간소메, 카스텔라를 먹는다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었다. 가끔씩 집에 오는 손님들이 할머니께 드리는 선물일 때뿐이었다.


발왕산1458, 평화봉


 며칠 전에도 아내와 함께 시장을 보다가 무심코 복숭아 통조림을 사 왔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깜박 잊고 있다가 옆에서 맛있게 먹고 있던 나를 보고 아내가 한마디 했다. “나는 어릴 때 이빨이 썩을 정도로 많이 먹었는데, 당신은 지금도 그렇게 맛있어요?”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결핍은 많은 얼굴을 하고 있다. 먹고 싶은 것을 많이 못 먹었을 때도, 가족이 화목하지 못했을 때도, 희망하는 몸무게보다 많이 나갈 때도, 연애를 제대로 못해봐도, 갖고 싶은 차를 못 가질 때도 모두 가득 채워지지 않은 결핍이 될 수 있다. 사람마다 그 정도에 따른 차이가 있을 뿐이다.



 결핍은 가끔씩 성공을 위한 강한 동기부여가 될 때가 있다. 또한, 가끔은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 때도 있다. 그처럼 결핍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결핍을 이해하려면 오랫동안 함께 노력해야 한다. 아니,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결핍은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더 이상 결핍이 아니다. 입 밖으로 스스로 그 결핍을 말하는 순간 이미 그 결핍의 콤플렉스는 극복되었다는 뜻이다. 결핍은 다루기 나름이다. 잘 다루면 인생의 약이 되지만  잘못 다루고 깊이 감추면 감출수록 스스로에게뿐만 아니라 세상에 독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결핍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가능한 서로에게 친절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모두 누구나 각자의 결핍, 그 콤플렉스를 뛰어넘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노한 윌 스미스가 아내의 외모를 유머의 소재로 사용한 시상자에게 달려가 빰을 후려치는 장면을 보았다. 그의 아내가 탈모 스트레스로 삭발한 것을 알기 전까지 윌 스미스의 품위 없는 행동을 비난했다. 하지만, 곧 그 삭발의 이유를 알고 나서는 품격 있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숨겨놓은 결핍은 그처럼 인간의 품위와 품격을 한순간에 잃게 하기도 한다. 물론 인간의 품위와 품격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자부심에서 생겨난다. 호랑이는 아무리 쓰다듬는다고 해도 고양이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결핍을 숨겨놓고 쓰다듬기만 해서는 안된다. 물리면 죽는다.



 드라마 속의 ‘해방 클럽’ 슬로건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정직하게 보겠다”란 대사처럼, ‘뭔가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는 척 연기하는 삶이 아니라 가진 것이 없어도 결핍을 느끼지 않는 삶’의 태도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사는 것이 먼저다. 내 안에 없는 것은 밖에서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걸 뒤로하고 스스로 그 결핍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가득 채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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