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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Dec 02. 2022

인간관계는 사냥이 아니라 농사짓는 것과 같다

잊힐 권리, 잊을 권리


 언젠가 회사에서 임원회의 중 카톡 메시지가 아이폰 화면에 떠올랐다. 퇴사 후 십오 년 넘게 소식이 없었던 회사 동료였다. 메시지 내용은 아들이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축하해달라는 청첩장이었다. 함께 회의를 하던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런 경우에는 대개 어떻게 하는지 각자의 경험을 물어보았다.


 그중 한 후배가 말한 그의 원칙에 귀가 솔깃했다. 그의 원칙은 근래 십 년 내에 전화통화나 문자 메시지라도 한번 주고받은 사람에게는 축의금 또는 부의금만 보내고, 최근 오 년 이내에 한 번이라도 만난 사람은 가능한 직접 결혼식장이나 조문을 간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환난상휼의 정신에 따른 우리의 결혼, 조문 문화의 옳고 그름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방역당국의 강요된 제도로서 참석자 숫자를 규제하면서 조금씩 혼례와 장례문화도 간소하게 변해왔다. 선진국처럼 함께 나눌 추억과 함께 했던 삶을 이별할 수 있는 사람들만 참석하는 작은 결혼식, 조용한 장례식이 일반화가 될 날도 멀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한 달에도 몇 번씩 결혼식과 장례식을 오가며 느꼈던 생각은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한 결혼식과 장례식의 당사자들에게 통과의례처럼 축하와 애도를 하는 것에 의문이 들곤 했지만 우리의 오래된 문화이기에 누구보다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열심히 찾아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십 년 이상 소식이 없었던 지인들에 대한 결혼, 조문은 그 회사 후배의 원칙을 공감하고 기준으로 삼고 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그 기준을 벗어난 지인일지라도 청첩장이나 부고 메시지를 받게 되면 환난상휼의 문화를 존중해서 혼주, 상주의 계좌로 축의금, 부의금을 보내 마음을 전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했거늘 사람의 마음이나 형편이야 말한들 무엇하겠는가. 평소 안부도 없다가 연말 승진 시 신문에 인사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십 년, 이십 년이 지나 오랜만에 안부를 전해온 사람들로부터 당했던 나쁜 경험들( 기부 강요, 보험 권유, 무리한 부탁, 급전 차용 등등)은 차치하고라도 솔직히 말하면 누구인지에 따라 안부가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오조포구, 서귀포


 모르는 척할 수가 없기에 그저 안부를 묻긴 하지만 별로 궁금하지 않았으니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한 번이라도 인연을 맺어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핸드폰, SNS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문득 안부를 전할 수 없는 것은 이런저런 이유로, 또는 그동안 사무치게 보고 싶거나 많이 궁금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관계란 시간이 지나면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어느 누구든 지나간 인연이 좋았으면 아름다운 추억이고 나빴다면 좋은 경험으로, 있는 그대로 남겨두면 되지 않을까. 어떤 사람들은 몇십 년을 잊고 살다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기분에 따라 갑자기 연락을 해온다. 설사 다시 만난다 해도 그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다. 누구든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으면 시들기 전에, 서로가 무뎌지기 전에 마음을 전해야만 한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해 굳이 과거의 추억들을 다시 끄집어낼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보고 싶고 간절하게 그립다한들, 보이지 않는 서로의 정서적 교감이 없다면 민폐일 뿐이다. 십 년 이상 서로 연락할 수 없었다면 노래 가사를 빌리지 않더라도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연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모든 인연을 다 이어갈 필요도 없고, 이어갈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진정한 인연과 스쳐가는 인연은 구별해야 한다. 자신이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선택과 집중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쓸데없는 인간관계에 비용과 시간, 그리고 감정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요즘은 불행하게도 조용히 ‘잊힐 권리, 잊을 권리’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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